“탈출구가 없다” 3高에 깊어지는 자영업자들 ‘한숨’
전문가들 “자영업자 부담 덜어줄 정책 도입 시급” 한목소리
(시사저널=김성희 창업 칼럼리스트)
'한국 경제의 실핏줄'로 불리는 자영업자의 한숨 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년 이상 계속된 '코로나 터널'을 지나고, 방역 완화 조치가 나올 때만 해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악화됐다. 매출은 줄어들었는데, 인건비나 식재료 등 고정비 지출이 크게 증가한 데다 대출 '이자 폭탄'까지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원재료비 급등
물론 소비심리는 많이 개선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기준 가계 평균소비성향은 올해 70.7%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70%대를 회복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75.8%)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는 점이다. 소비성향 상승 기여도 역시 여행비와 식비 등 여가 관련이나 자동차 등 내구재에 집중돼 있다. 일종의 보복소비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향후 금리와 물가 여건상 추가적인 소비의 하방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만큼, 가계의 평균소비성향 회복세 지속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진단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식재료비 상승도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5% 인상된 9860원으로 결정됐다. 자영업자들은 동결을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저임금 9860원에 주휴수당 등을 고려하면 시급은 1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가장 먼저 반발한 단체는 전국편의점주협회다. 편의점 업계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점포당 월 20만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업종도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더해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의 영향으로 농산물 등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식재료 활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실제 외식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채소 가격은 6월초와 비교해 300~400% 급등한 상태다. 이마저도 폭염으로 폐기하는 식자재가 크게 증가했다. 서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자영업자는 "4kg 상추 한 박스를 지난해에 비해 2.5배 더 지불하고 납품받았는데 폭염 때문에 잎들이 녹아 절반을 버렸다"고 토로했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주요 과일 생산량 역시 전년 대비 최고 20% 이상 감소하면서 가격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들을 원료로 하는 각종 양념·소스류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유통업체 할인이 반영된 주요 상품의 실제 판매가격을 평균한 결과에 따르면 1년 새 고추장(1㎏), 된장(1㎏), 토장(500g), 양념쌈장(500g) 등의 가격이 30~40%씩 상승했다. 마요네즈, 케첩, 식용유, 소금, 참기름 등 요리에 필요한 양념 등도 20~30%씩 오름세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가스요금과 전기료, 임대료 등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식재료 외에 고정적으로 부담해야 할 부대비용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얘기다. 자영업자들은 최근 수년간 물가 상승은 물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감염병 예방 비용이 자영업자에게 전가된 탓에 수익구조가 망가졌다고 지적한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이 제한된 탓에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빚내서 연명한다'는 푸념마저 나올 정도다.
자영업자 10명 중 4명 "3년 내 폐업 고려"
고정비용은 증가하고 수익은 낮아지면서 대출을 받으려는 자영업자도 크게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지난해 3분기에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후, 매 분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은행이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이던 2019년 말(684조9000억원)에 비해 50.9%나 늘어났다.
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경고음도 커졌다. 지난해 3월말 기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 이상인 자영업 가구는 38만8387가구에 달한다. 자영업자 가운데 39만 명가량이 소득의 70%를 대출과 이자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 비율이 56.4%에 이른다. 자영업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여기저기서 대출을 끌어모아 빚으로 빚을 갚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9월말 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종료를 기점으로 자영업자들의 연쇄 폐업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은 조만간 '정책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3년여간 5차례나 만기연장이 진행됐지만 오히려 빚만 늘어났던 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자영업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들은 올 하반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음식점업, 숙박업, 도·소매업, 기타서비스업 등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자영업자 2023년 상반기 실적 및 하반기 전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부정적인 답변 일색이었다. 조사에 응한 자영업자 중 63.4%와 63.8%가 작년보다 매출과 순익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향후 전망도 암울하다.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보다 감소할 것이란 응답(50.8%)이 증가할 것(49.2%)이라는 답변보다 많았다. 여전히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경기 회복에 대한 전망이 흐려지면서 폐업 고려자도 증가 중이다. 자영업자의 40%는 실적 악화로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폐업을 고려하는 주요 이유로는 영업실적 지속 악화(29.4%), 자금사정 악화 및 대출상환 부담(16.7%), 경기 회복 전망 불투명(14.2%) 등을 꼽았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자영업자들은 어두운 경기 전망 속에서도 대출 부담으로 폐업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내수 활성화 촉진 등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줄 정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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