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근 누락 전관 설계 5곳 최근 1년반 사이 334억 챙겼다 [부동산360]
작년 이후에도 ‘설계용역’ 수의계약만 수백억원 챙겨
공개입찰 아닌 수의계약으로 따내 짬짜미 논란 증폭
재작년 혁신안에도 수의계약 통로 여전
“공사 독점력이 퇴직 후 사적 욕심으로”
[헤럴드경제=신혜원·고은결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표한 철근 누락 아파트단지 중 ‘설계 미흡’이 드러난 10개 단지의 설계업체가 지난 1년 반 동안 LH 설계용역을 300억원 넘게 수의계약을 통해 수주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이 업체들은 유명한 ‘LH 전관업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히 공개 경쟁 입찰 방식이 아닌 LH 측이 임의로 정하는 수의계약 형태로 사업을 따낸 것으로 드러나 짬짜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전관업체 입찰 배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입찰 방식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LH의 2022~2023년 상반기 수의계약 체결 현황을 확인한 결과, ‘설계 미흡’ 철근 누락 단지 10곳을 설계한 업체 5곳(에스아이그룹·범도시건축·케이디엔지니어링·이어담건축·다인그룹엔지니어링)은 최근 1년 반 동안에도 333억6949만8000원 규모로 수의계약 일감을 가져 갔다. 이 업체들은 각각 ‘전관업체’로 유명한 회사들이다.
해당 기간 각 업체가 수주한 설계용역 수의계약 면면을 살펴보면, 에스아이그룹은 총 128억9057만6000원 규모의 LH 발주 용역 5건을 따냈다. 에스아이그룹은 파주운정 A34 설계에 참여한 건축사무소다. 해당 단지는 무량판 기둥 331개소 중 12개소가 철근이 누락됐다. 에스아이그룹은 지난해 7월 고양창릉 S-1BL 공동주택 설계용역(계약액 25억9843만1000원), 11월 하남교산 B-5BL 공동주택 설계용역(계약액 26억9519만5000원), 올해 6월 남양주양정역세권 S-1BL 공동주택 설계용역(37억1593만1000원) 등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공동주택 외에도 지난해 3월 대구율하 혁신성장센터 건축설계용역(계약액 18억9325만5000원), 12월 전남대 캠퍼스혁신파크 도시첨단산단 HUB동 건축설계용역(계약액 19억8776만4000원)도 수의계약을 통해 수주했다.
범도시건축은 총 55억1620만1000원 상당의 LH 발주 용역 2건을 따냈다. 이 업체는 지난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충남도청이전신도시 RH11 블록을 설계한 업체다. 해당 단지는 무량판 기둥 336개소 중 13개소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도시건축은 지난해 9월 인천계양 A10BL 공동주택 설계용역(22억6009만4000원), 10월 대전둔곡 A4BL 공동주택 설계용역(32억5610만7000원)을 수주했다. 이어담건축은 총 36억8986만5000원 상당의 LH 발주 용역 2건을 수주했다. 수원당수 A3를 설계한 업체로, 해당 단지는 무량판 기둥 325개소 중 9개소의 철근이 누락됐다. 또 이어담건축은 지난해 1월 인천계양 A-1BL 공동주택 설계용역(18억8779만2000원), 올해 6월 서울 쌍문역동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지구 기본 설계용역(18억207만3000원)을 수주했다.
케이디엔지니어링은 총 50억1165만2000원 상당의 LH 발주용역 2건을 수주했다. 케이디엔지니어링은 인천가정2 A-1BL을 공동 설계한 업체로, 해당 단지는 무량판 109개소 중 무려 37개소의 철근이 누락됐다. 케이디는 지난해 7월 남양주왕숙 S-12BL 공동주택 설계용역(계약액 22억714만9000원), 지난해 11월 고양탄현 A3BL 공동주택 설계용역(28억450만3000원)을 수주했다. 다인그룹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다인)는 총 62억6120만4000원 규모의 LH 발주 용역 2건을 따냈다. 다인은 LH가 발표한 철근 누락 단지 중 파주운정3 A23 블록을 설계한 사무소로, 해당 단지는 구조계산 미반영으로 무량판 기둥 304개소 중 6개소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인은 지난해 12월 양주회천 A-26블록 공동주택 설계용역(계약액 38억7556만3000원)과 올해 4월 남양주왕숙 S-17블록 공동주택 설계용역(계약액 23억8564만1000원)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각 사업의 발주 방식에 대한 선택 경로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지만 기본 방식인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어서 전관예우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LH는 지난 2021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가 드러나자 그해 7월 ‘퇴직한 지 5년이 안 된 전관이 대표나 임원으로 있을 경우 수의계약이 제한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LH혁신안을 내놨다. 그러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업체는 ‘특혜성 수의계약’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사실상 퇴직한 지 얼마 안 된 전관이 있는 업체도 여전히 일감을 따낼 수 있다. 다만 LH 관계자는 “설계공모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따라 기술심사(디자인 공모)를 거쳐 경쟁을 통해 최종 당선 업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수의계약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해 경쟁률이 낮은 제한경쟁도 LH가 입찰자 자격을 통제할 수 있어 수주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온 대형 전관업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LH 전관예우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공사가 갖고 있는 독점력 때문에 생기는 이슈”라며 “독점적 개발사업이나 정책적 과제를 하다 보니까 관련된 사업에 연결된 외주 관련된 부분들이 공사 측에서 좌지우지하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점력의 여파가 기존 직원들과 퇴직 이후의 자기들의 사적 욕심을 채우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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