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원희룡 장관, 'LH 카르텔'에 1년째 엄포만
"전수조사로 발본색원" 공언…이후 감감무소식
다시 '철근 누락' 논란 커지자…"방치할 수 없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산하 기관의 이권 카르텔에 팔을 걷여 붙였다. 최근 부실시공으로 논란에 휩싸인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카르텔이 자리 잡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H 외에도 도로, 철도, 항공 등 국토부와 관련한 모든 카르텔을 철저히 끊겠다고 공언했다.
원 장관이 이권 카르텔 문제를 겨냥한 것은 최근 논란이 된 부실시공의 원인 중 하나로 LH의 전관 예우가 지목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LH 출신 인사들이 건설 업계 곳곳에 포진해 LH 사업을 손쉽게 따내면서 부실시공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원 장관은 "더 이상 이런 잘못된 관행과 이권 카르텔을 방치할 수는 없다"며 "국토부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국토부와 LH는 원 장관의 이런 의지에 따라 지난달 31일 이후 체결한 전관 업체와의 계약을 모두 해지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총 11건, 648억원 규모에 해당한다. 이는 LH가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을 발표한 뒤에도 전관 업체들과 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조처다.
하지만 벌써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LH의 전관예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고, 이를 뜯어고치겠다고 한 정치권의 공언도 꾸준히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매년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LH의 전관예우 문제는 단골 손님처럼 지적된 바 있다. 당장 지난해 10월 국감에서도 LH의 퇴직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질책이 나온 바 있다. 지난 정권에서도 2021년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당시 전관예우 문제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부실시공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도적 허점 등으로 그간의 '대책'들은 무용지물이었다.
현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 장관은 1년 전 LH를 비롯한 산하 공공기관들에 만연한 이권 카르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특히 그는 전관예우 문제를 콕 집어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의 SNS를 통해 "공직자가 업체와 유착하거나 퇴직자와의 연결을 통한 카르텔을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같은 해 9월 국토부는 '산하 공공기관 혁신방안 마련' 추진 상황을 발표했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전반적인 공기업 혁신 방안을 마련했는데, 국토부는 별도로 이 방안을 발표했다. 원 장관의 의지를 강조하려는 듯 '중간발표' 형식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당시 국토부는 "산하 공공기관이 놓인 현 상황과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공공기관 혁신방안'을 추진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땅 투기 논란' LH, 임직원 가족도 부동산거래 조사한다(2022년 9월 7일)
하지만 국토부의 혁신 방안은 '중간발표'는 있었지만 '최종 방안'을 별도로 내놓지 않았다. 기재부 주도로 전반적인 혁신 방안이 나왔고, 이후 기재부가 공공기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는 게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원 장관이 1년 전 산하 공기관 혁신을 외치면서 "기재부 평가와 병행해 국토부에 특화해서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것과는 다소 다른 결과다.
국토부는 중간발표 당시 공공 기관이 사업 계약을 할 때 해당 업체의 퇴직자 재직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정작 LH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LH가 2021년 자체적으로 전관 재취업 기업의 수의계약 제한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확대한 만큼 추가 조처는 없었다는 게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원 장관은 모든 기관의 카르텔 문제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문제가 된 LH에 대해서는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결국 뒷북만 치는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원 장관과 국토부가 이번 부실시공 문제를 단순히 이권 카르텔 문제로 치부하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LH 출신이 취업했다고 해서 무조건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형준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LH 전관 업체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실시공을 했다면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면서 "하지만 LH 출신이 있다고 무조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LH 출신 중에서 전문성을 갖고 제대로 일을 하는 업체도 있을 텐데 무작정 배제하겠다는 것은 보여주기식 대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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