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MZ 작가, ‘히스토리’ 넘어 ‘마이 스토리’를 풀다
이민진 ‘파친코’ 성공 이후
영미권서 한국계 작가 주목
홈피 별도코너 만든 출판사도
미국이민 자매 비밀 다룬‘요크’
매리 초이 과거 경험담 담겨
시카고 도서관‘올해 책’선정
니콜 정 입양 회고록 ‘내가…’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 후보작
제니 한 로코‘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시즌3까지 제작 인기
평론가 “오리엔탈리즘 벗고
자신의 얘기 적극적으로 해”
서구 영미권의 주목을 받는 한인 작가들이 늘고 있다. ‘파친코’의 성공 이후 한국계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다.
뉴욕타임스(NYT)나 워싱턴포스트(WP), NPR 등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한국계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마다 리뷰나 인터뷰 기사를 올리고 있으며, 최근 한국문학 번역선집을 출간해 이슈가 됐던 세계적인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는 홈페이지에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별도 코너를 신설했다.
2021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NYT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줄곧 올라있는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의 미셸 자우너와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열어젖힌 문을 통해 젊은 한인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의 기회를 잡은 모양새다. 현지에서 호평받은 작품들은 한국어로도 속속 번역 출간되고 있다. 영미 문학계를 사로잡은 한인 작가들의 특별함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 발간된 매리 H K 초이(최현경)의 장편소설 ‘요크’(Yolk, 책읽는수요일)는 ‘성장’을 이야기한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시카고 공립도서관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밀워키 카운티 청소년 도서상 후보작 등에 선정되며 호평받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으로 이민 온 자매, 화자 ‘제인’과 그의 언니인 ‘준’이다. 소원했던 둘의 관계는 ‘준’이 암을 선고받은 후 변화하기 시작하고, 자매를 둘러싼 비밀이 밝혀진다. 소설은 섭식장애를 겪는 ‘제인’의 성장소설로 읽힌다. 20대 초반인 ‘제인’은 알코올과 무질서로 범벅된 무질서한 삶을 살다 변화하고 성장한다.
‘서툴렀던 20대’에 초점을 맞춘 작가는 “나의 모든 책은 내가 20대를 얼마나 서투르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이야기했다. 책엔 식이장애와 신체이형장애, 폭식증 등 작가의 실제 과거가 담겼다. 서울에서 태어나 14세에 미국 텍사스에 정착한 매리 H K 초이는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한인 작가로, 데뷔작 ‘비상 연락처’(Emergency Contact, 2018)가 NYT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며 단번에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 역시 곧 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젠 곁에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가 큰 인기를 얻은 뒤 가족과 엄마를 이야기하는 회고록도 다수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된 니콜 정의 회고록 ‘내가 알게 된 모든 것’(All You Can Ever Know, 원더박스)은 입양된 저자가 친가족을 찾는 이야기로, ‘가족’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난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WP, 타임, NPR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후보에도 올랐던 화제작이다. 한국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백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란 저자 니콜 정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진짜 부모님’ 안 보고 싶어?”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친언니를 만나고 친부모를 찾기까지, 이 작품은 ‘입양’에 집중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다.
2021년 미국에 출간된 후 호평을 얻고 최근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된 회고록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 글항아리) 역시 가족, 엄마에 관한 이야기다. 백인 미국인 부친과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그레이스 M 조가 어머니 ‘군자’의 삶을 통해 전후 한인 이주여성의 삶의 궤적을 탐구한 내용이다.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타임, NPR이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주변인으로서의 소외감 등에 집중했던 소설은 이제 성장,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성공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명의 드라마가 시즌3까지 제작되는 등 큰 인기를 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한국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되 평범한 10대 소녀가 할 만한 일상을 보여주며 재기발랄한 하이틴 로맨스를 선보였다. 이 작품을 쓴 제니 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항상 정체성으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것이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며 “백인과 대치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지 않은 미국 내 한인 작가들의 책들도 주목되는 작품이 많다. 성형수술·룸살롱 문화 등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룬 프랜시스 차의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If I Had Your Face, 2020), 엄마·가족에 관한 이야기인 E J Koh(고은지)의 ‘마법같은 언어’(The Magical Language of Others, 2020), 한국인 가족을 둘러싼 비밀을 다룬 지민 한의 ‘The Apology’(2023) 등이 그것이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한국의 역사와 비극을 서양이 보고 싶어 하는 시각에서 그려낸 게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인 문학의 특징이라면, 요즘 나오는 한인 문학의 특징은 역사적인 무게나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용흘의 ‘초당’(1931), 김은국의 ‘순교자’(1964) 등 초기 한인 문학들에선 한국에 대한 그리움, 향수가 짙게 배어 있었고 1990년대 이후엔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 위안부’, 이창래의 ‘제스처 라이프’ 등 역사적인 사건, 비극을 다룬 소설이 많았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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