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쇼크’ 소극 대처… 맥쿼리 “대규모 부양책 없인 시장 못살려”[Global Economy]
부동산 프로젝트 ‘헝다의 4배’
비구이위안, 내달 디폴트 우려
중국 당국 주담대 금리 안내리고
우회적 소비진작 정책만 의존
일각선 “중국 더는 쓸 카드 없다”
한국, 반도체 등 수출감소 불가피
전문가 “제2 리먼사태 없을것”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
중국 부동산 기업의 부채로 인한 위기감이 연일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21년 헝다(恒大)그룹의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시발점으로 연쇄적인 부동산 기업들의 디폴트에 최근에는 재정 상태가 양호하다고 알려진 비구이위안(碧桂園)은 물론 국영기업인 위안양(遠洋)이 채권에 대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소극적인 대처에만 머물면서 국제사회는 그 불똥이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헝다보다 심각한 비구이위안 = 중국 부동산 위기는 이미 2021년 9월 헝다그룹이 디폴트에 놓이면서 본격화됐다. 중국 당국이 부채 비율을 낮추고 현금 보유율을 높이라는 지침을 비롯해 여러 부동산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지속적으로 문어발식 경영을 이어간 결과 3000억 달러(약 402조 원) 규모로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헝다 외에도 많은 부동산 기업의 디폴트가 연이어 터지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는 이어져 왔다. 헝다는 지난 17일 미국 연방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요청을 냈다. 그리고 2017년 이래 업계 매출 1위를 지켜왔던 비구이위안이 두 차례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한 상황에 오는 9월 유예기간이 다가오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기준 1조4000억 위안(약 256조228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비구이위안이 파산할 경우 헝다보다 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헝다가 중국 정부의 경고에도 문어발식 확장에 나섰다가 몰락했다면, 비구이위안은 매출도 괜찮고 재정 상태도 양호했으며 중국 정부의 정책도 비교적 잘 따랐던 회사인데도 위험에 빠졌다. 비구이위안이 추진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 규모는 3121개로 800개인 헝다의 4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 때문에 약 7만 명의 직원과 3만3207개 공급업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비구이위안의 위기에는 악화한 중국의 시장 상황이 한몫하고 있다. 싱가포르 롄허자오바오(聯合早報)는 “비구이위안이 제대로 된 변제를 하기 위해선 월평균 매출이 220억 위안 이상이어야 하지만 7월 매출액은 그 절반 수준인 121억 위안에 그쳤다”고 전했다. 옌웨진(嚴躍進) 중국 이쥐(易居)연구원 애널리스트는 “현재 시장규모는 1조 위안 이상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비구이위안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자산관리업체 중즈(中植)그룹 산하 중룽(中融)국제신탁은 투자자들에게 신탁상품의 만기 상환을 못 하는 등 위기의 불길이 신탁업체 등 금융권으로 번져가고 있다.
◇중국 당국의 소극적 대처 = 그럼에도 중국 당국의 대처는 소극적이다. 중국 당국은 20일 부동산 대출 금리로 통하는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종전과 같이 공시했다. 전문가들이 0.15~0.24%포인트 인하할 거로 전망한 것에 크게 못 미친다. 리창(李强) 총리도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소비 확대·투자 촉진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 정책은 담기지 않았다.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매번 등장하던 “주택은 투기가 아닌 거주가 목적이라는 전제하에 부동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밝힌 것 외에 추가 정책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래리 후 맥쿼리 중국경제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중국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부동산과 인프라 대상의 대규모 부양책이 필요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우회적인 소비 진작 정책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죽어 가는 중국의 소비 시장을 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정부의 소극적인 움직임에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중국 정부가 진행해온 과도한 경기 부양책과 부동산 주도의 성장 모델은 ‘막대한 정부 부채와 재정 위기’라는 후유증을 낳았다. 또 코로나19 위기 때 중국 정부는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이로 인해 현재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정부·기업·가계부채) 비율은 282%로 추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공식적으로 77%지만 지방 정부 부동산 투자기구(LGFV) 부채를 포함하면 85%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도한 금리 인하는 위안화의 가치를 점점 떨어뜨려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중국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 우려 확산 = 중국 경기의 침체는 전 세계 경제에 최대 악재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기지와 소비시장의 침체는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 무역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의 경우 중국과 밀접한 반도체·석유·철강 기업의 실적 둔화가 우려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성장률이 4%대 아래로 내려갈 경우 한국도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 수요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역수지·경상수지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중국의 단체관광 허용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의 효과도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중국 부동산 경제의 여파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처럼 전 세계 금융기관을 파산으로 이끄는 단계까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이런 상품들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이 투자했다가 연쇄적으로 파국을 맞았지만, 중국의 부동산 관련 금융은 폐쇄적이어서 전 세계적 금융사의 파산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상하이 등 월세 여전히 고공행진… 집 공유 넘어 ‘침대공유’
월세 공유 가구 50% 이상 늘어
‘1선 도시’ 신규주택가 보합 유지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1선 도시(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선전 4개 도시)의 집값에 젊은층들은 방 임대료를 분담하며 한 침대에서 생활하는 ‘베드메이팅’이란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존에 같은 집을 공유하는 홈 셰어링도 어려운 사람들은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며 혹독한 중국 부동산 현실을 이겨 나가고 있다.
홍콩, 중국 SNS 샤오훙수(小紅書) 등에는 최근 같이 침대를 사용할 ‘베드메이트’를 구하는 구인 콘텐츠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 방 월세를 분담할 사람을 구한다는 것. 한 구인 글에는 ‘코를 골지 않지만 가끔 잠꼬대를 하고 오전 9시 기상 오후 9시 취침, 화요일 휴무’라며 ‘넓은 방, 창문, 양탄자, 테이블과 의자 2개’ 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최근 베드메이트를 구했다는 한 여성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코를 골거나 △몽유병에 걸리거나 △남자를 데려오지 않기에 합의하고 월세 3000위안짜리 방세를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 신저우칸(新週刊)은 “베이징과 상하이의 경우 베드메이트로 불리는 월세 공유 가구의 비율이 예년보다 각각 50% 이상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은 부동산 시장 위기 속에 중국 집값은 하락 추세에 있지만, 1선 도시 집값은 거의 떨어지지 않고 있고 월세는 날로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6일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7월 1선 도시의 신규 주택 판매 가격은 전월 대비 보합세를 유지했고, 중고 주택 판매 가격은 전월 대비 0.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베이징의 경우 신축 주택 판매가격 상승률이 전월 대비 3.5%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지난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아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으며, 통계를 발표하지 않은 7월에는 1160만 명의 새로운 대학 졸업생이 취업 시장에 진입한 만큼 실업률이 더 높아졌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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