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초게의 마라톤 2시간 벽 돌파 비결은 ‘공기 저항’
V자형 페이스메이커로 3분33초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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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라톤 세계 기록 보유자이자 올림픽 2회 금메달리스트, 베를린과 런던 마라톤 각 4회 최다 우승자,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18번 참가해 15번 우승한 선수, 역대 최고 기록 상위 6개 중 4개를 갖고 있는 마라토너, 2014년 첫 우승 이후 코로나19 발생 연도인 2020년을 빼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건 우승 제조기.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로 꼽히는 케냐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39)가 세운 숱한 기록은 말 그대로 현란하다. 그가 갖고 있는 세계 최고 기록은 2022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올린 ‘2시간 1분09초’다. ‘꿈의 기록’이자 ‘마의 벽’으로 통하는 2시간에서 불과 69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킵초게는 사실 이미 2시간의 벽을 깬 경험이 있다. 2019년 10월12일 영국 화학업체 이네오스의 후원으로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 파크에서 열린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서 1시간59분40.2초의 기록으로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날 마라톤은 킵초게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경주여서 국제육상연맹(IAAF)으로부터 기록을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2시간 벽을 깬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킵초게 앞뒤로 7명의 페이스메이커가 협력
후원사는 당시 그의 신기록 달성을 위해 많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했다. 자전거를 탄 보조요원들은 킵초게가 원할 때 즉시 음료를 건네줬고, 킵초게 앞에서 달리는 차는 형광색 빛을 쏘며 ‘속도 조절’을 도왔다. 경기 주최 쪽은 습도, 온도 등 최적의 날씨에서 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경기 전날까지 경기 시간을 확정하지 않았다.
신기록 달성 작전의 압권은 페이서(페이스메이커)들의 독특한 대형(포메이션)이었다. 페이서 7명 가운데 5명이 킵초게 앞에서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달렸고, 2명은 킵초게 뒤에서 좌우로 나란히 뛰었다. 마라톤을 비롯한 기록 경기에서 엘리트 선수의 경기력을 돕기 위해 흔히 쓰는 이 전략을 드래프팅이라고 한다.
킵초게는 앞서 2017년 5월에도 이탈리아 몬자의 포뮬라 원(자동차경주) 서킷에서 2시간 벽 깨기에 도전한 바 있다. 나이키가 후원한 이 경기는 2시간26초의 기록으로 끝났다. 이네오스는 이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페이서를 늘렸다.
킵초게가 느끼는 공기 저항이 절반으로
킵초게가 2시간 벽을 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킵초게를 앞뒤로 둘러싼 채 일정한 대열을 유지하며 함께 뛴 페이서들이 공기 저항을 줄여준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의 에콜 상트랄 드 리옹 연구진은 실물 크기의 10분의 1인 페이서 마네킨을 동원해 풍동 실험을 한 결과, 페이서들이 킵초게의 기록을 3분33초 단축해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영국 ‘왕립학회보 A’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풍동 실험에서 킵초게의 2019년 페이서 대형(앞쪽에 V자 5명과 뒤쪽에 2명)을 그대로 따라했다. 측정 결과 이 대형은 킵초게가 느끼는 공기 저항을 절반 정도 줄여줬다.
t자형으로 달리면 49초 더 단축 가능
연구진은 이어 다른 페이서 대형들은 기록을 얼마나 단축시키는지도 실험했다.
세 가지 대형을 실험한 결과 가장 좋은 기록을 낸 것은 선수 앞쪽에 V자가 아닌 소문자 t 모양으로 5명의 페이서를 포진시킨 대형이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맨 앞에 한 명, 그 뒤에 또 한 명의 페이서가 달리고, 그 뒤로 두 명의 페이서가 나란히, 그리고 그 뒤에 다른 한 명의 페이서가 달리는 형태다. 실험 결과 t자형으로 달릴 경우 V자 대형으로 달릴 때보다 기록을 49초 더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킵초게가 혼자 달릴 때와 비교하면 총 4분22초 기록 단축 효과를 볼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콜로라도볼더대 로저 크램 교수(생리학)는 연구진이 제안한 페이서 대형에 대해 “좀 더 폭이 좁은 쐐기로 공기를 조각내는 것과 같은 매우 혁신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식 경기에서 허용하는 페이서는 일반적으로 2~3명 정도다. 지난해 베를린 마라톤에서 킵초게는 24km 지점까지 3명의 페이서 도움을 받았다. 크램 교수는 “당시 페이서가 킵초게와 10km를 더 함께 달렸다면 기록을 1분 더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킵초게는 오는 9월24일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해 이 대회 5번째 우승과 함께 공식 대회 ‘2시간 벽’ 깨기에 다시 도전한다. 매년 9월에 열리는 베를린 마라톤은 코스가 평탄하고 날씨도 쾌적해 좋은 기록이 많이 나오는 대회로 정평이 나 있다.
킵초게는 이번에도 페이서들과 함께 뛸 것이다. 기존 페이서 전략에 덧붙여 과학자들이 알아낸 최고의 페이서 대형 효과를 시험하려면 선수들간의 ‘협력 드래프팅’이라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킵초게는 과연 어떤 작전으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까?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98/rspa.2022.0836
Wind tunnel evaluation of novel drafting formations for an elite marathon runner.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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