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영의 케해석] 인디 밴드 감성에 '아이돌력' 한 스푼···밴드 루시 매력 탐구

허지영 기자 2023. 8.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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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주목할만한 케이팝 아티스트, 허지영 기자가 케-해석 해봤습니다!

록 페스티벌 등 여러 가수가 참여하는 공연에서 당일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메인 가수를 ‘헤드라이너’라고 한다. 페스티벌의 얼굴인 만큼 인지도와 데뷔 시기 등 다양한 조건을 검토해 신중하게 정한다. 지난해 5월 열린 뮤직 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뷰민라) 2023’에 데뷔 3년 차의 밴드가 헤드라이너로 당당히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바로 루시(LUCY)다. 뷰민라는 국내 뮤직 페스티벌에서 규모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행사. 지난해 헤드라이너가 적재와 폴킴, 잔나비로 공연 당시 데뷔 7년차 이상의 인기 가수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루시의 헤드라이너 선정은 놀랍다. 밴드 음악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 음악 시장에서 불과 3년 만에 뮤직 페스티벌 대표 출연자급으로 성장한 밴드 루시,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매력을 갖고 있을까?

루시 미니 4집 '열' 무드 이미지 / 사진=미스틱스토리

◇아이돌의 상징 ‘버블’하는 밴드 = 루시는 최상엽(29·보컬)·신예찬(31·바이올린)·조원상(27·베이스)·신광일(26·드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지난 2019년 방영된 JTBC '슈퍼밴드' 준우승팀으로 데뷔해 현재 윤종신이 이끄는 소속사 미스틱스토리에 소속돼 있다. 미스틱스토리에 소속된 가수 가운데 밴드는 루시가 유일하다. 기존 인디 밴드와는 달리, 아이돌 소속사에서 론칭하는 기획형 아이돌의 행보를 선택한 것이다.

루시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대중성이다. 이들은 아이돌 그룹 같은 귀엽고 상큼한 외모와 콘셉트를 내세운다. 아이돌의 상징인 ‘버블(아티스트와 대화할 수 있는 유로 메신저)’도 한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아이돌 이외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버블에 참여하지만, 밴드 그것도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밴드가 버블을 한 사례는 흔치 않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루시는 누구나 공감할 법한 '청춘'을 노래하고, 장조 위주의 밝은 코드와 멜로디로 곡을 짠다. 2021년 싱글 3집 앨범에서 선보인 '히어로'와 '난로'에서는 드라마틱한 곡 전개로 리스너를 사로잡았으며, 2022년 출시한 1집 앨범에 수록된 '놀이'에서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풍부한 밴드 음향에 녹여냈다.

지난 17일에 발매된 신보 '열'에서도 루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타이틀곡 '아지랑이'는 아기자기하고 명랑하고, 때로는 차분하며, 때로는 폭발적으로 터지는 청춘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음악으로 고스란히 풀어냈다. 가사에서는 풍부한 단어밭과 섬세한 관찰력이 보인다. 마치 시 같은 가사다. /나도 키 작을 적엔 넘어지면 모두가 눈물 닦아 줬었는데 / 부서지는 열성(列星)의 무게를 요동치는 반야의 시간 속 / 사랑하기 위한 삶 살기 위해 한 사랑.

루시 미니 4집 '열' 커버 이미지 / 사진=미스틱스토리
루시 미니 4집 '열' 이미지(왼쪽부터 신광일, 최상엽, 조원상, 신예찬) / 사진=미스틱스토리

◇앨범 전 곡이 자작곡···‘될성부른 싱송라’ 증명 = 물론 대중적인 이미지 만으로 이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밴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음악성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 팀 내 프로듀서 조원상을 필두로 국내 밴드답게 모든 곡을 만들고 가사 말을 직접 쓴다. 악기 구성도 흥미롭다. 이들 밴드 구성의 독특한 점은 신시사이저·전자피아노 등을 연주하는 건반 파트 멤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멜로디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여기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의 공이 크다. JTBC '슈퍼밴드' 데뷔 전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주목 받았던 신예찬은 타이틀곡 브릿지에서 그야말로 '신들린' 바이올린 독주를 선보인다. 이는 초등학생때부터 갈고 닦은 바이올린 실력과, '슈퍼밴드' 출연 이전부터 밴드 '가능동'의 일원으로 수많은 버스킹 무대를 하며 쌓은 내공 덕이다.

루시의 색채는 조원상의 손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시의 대부분 곡의 작사·작곡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의 프로듀싱 능력은 루시 결성 이전에도 돋보였다. '슈퍼밴드'에서 선보인 곡 '어드밴티지 오브 어 라이프타임(Adventure Of A Lifetime)' 무대는 원곡자이자 세계적인 록 밴드 콜드플레이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다. 화려한 능력을 가졌지만 성격은 반전미를 뽐낸다. '버블'에서 생활형 애교를 마음껏 드러내며 팬들의 웃음을 담당하고 있다.

신광일은 그룹에서 막내이자 드럼 포지션이다. 특이한 점은 드럼을 치며 보컬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드럼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는 팔방미인이다. 귀를 사로잡는 따뜻한 음색으로 '슈퍼밴드'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메인 보컬을 해도 손색없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다. 아울러 약 5년 간 미스틱스토리 연습생으로 머물며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그가 드럼을 선택한 이유는 '슈퍼밴드' 당시 자신의 색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욱 강했기 때문이었다.

팀의 보컬을 맡은 최상엽은 사실 '슈퍼밴드'에서부터 루시는 아니었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시가 준우승을 한 후 기존 보컬인 이준혁이 밴드 기프트로 돌아가며 보컬 자리가 공석이 됐고, '슈퍼밴드'부터 최상엽을 눈여겨 보고 있던 조원상이 그를 데려왔다. 최상엽은 버스킹과 방송을 통해 이미 라이브 잔뼈가 굵은 보컬리스트다. 2016년 방송된 MBC '듀엣가요제'에서 빅스 켄과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은 최상엽의 팬들에게 '입덕 포인트'로 꼽힌다.

루시 '2023 뷰티풀 민트 라이프' 헤드라이너 이미지. / 사진=엠피엔지뮤직
루시 단독 콘서트 '열, 다섯' 현장 이미지 / 사진=미스틱스토리

루시는 올해 '뷰티풀 민트 라이프' 뿐만 아니라 '헤브 어 나이스 트립 2023', '어썸 뮤직 페스티벌' 등 국내 유수의 페스티벌에 잇달아 참여했다. 지난 4월에 열린 단독 콘서트 '인서트 코인'은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후 팬들의 열띤 성원에 힘입어 추가 공연을 열었는데, 장소가 올림픽홀이었다. 데뷔 4년 차 국내 밴드가 약 3000석 규모의 공연장에 입성한 건 이례적이다. 루시는 지난 19일과 20일 양일간 서울 동대문구 장충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 '열, 다섯'을 열고 약 6000명의 팬들과 만났다. 이어 남은 올해에도 각종 페스티벌과 앨범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아프고 시린 청춘을 보듬는 곡을 들려주는 루시 역시 그 누구보다 치열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루시의 청춘은, 현재 진행형이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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