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책임 드러난 해병대 1사단장 “징계 가능?”···안 하나 못 하나[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여단장의 범죄 혐의는 특정하기 어렵다” 판단
국방위·법사위 동시 열려, 외압 의혹 관련 현안질의 잇따라 ‘매우 이례적’
재검토 결과,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와 크게 달라 사건축소 논란 불가피
“범죄 혐의 특정한 인원 대폭 축소하라는 시그널 경찰에 명확히 제한 꼴”
”수사보고서 회수해 재검토한 국방부, 결국 사단장 구하기 나선 모양새”
“국방장관 안일한 생각···배제된 대상이 ‘죄 없는 사람’이란 결론내린 셈”
“임성근 1사단장 지휘 책임 확인···현장 작전통제권한은 육군 50사단장”
“기소 여부는 검찰 판단···수사 외압 논란 커질수록 존재 꼭꼭 감춰” 지적
“법률 책임 별개로 지휘 책임 분명해 무조건 징계 조치할 수 밖에 없다”
법원·검찰·경찰 수사심의위원 추천 않기로···군검찰수사심의위 불발 위기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해병대 수사단의 고(故) 채 상병 사망사건 기록에 대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가 나왔지만,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각의 우려한 것처럼 해병대 수사단 판단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1일 해병대 수사단이 초동조사에서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8명에 대해 재검토한 결과, 대대장 2명만 범죄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인지통보서를 이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대장 2명은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여단장의 지침을 위반해 ‘허리까지 입수’를 지시해 채상병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여단장의 범죄 혐의는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대목이다. 사단장과 여단장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특정한 8명 중 2명만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논란이 된 임 사단장을 비롯해 박상현 7여단장·중대장·현장 간부 등 4명의 경우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해 경찰에 송부하기로 했다. 다만 사고 현장에 채 상병과 함께 있었던 중위·상사 하급간부 2명은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아예 경찰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결론에 대해 조사본부 관계자는 “조사본부는 15명으로 태스크포스(TF)를 편성해 기록 전체를 검토했다”며 “8명 중 6명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만장일치로 합의됐다”고 강조했다.
논란은 국회에서 여야 간 치열한 대립이 벌어지면서 더욱 불을 지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가 동시에 열려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한 해병대 수사단의 판단에 대한 외압 의혹과 관련한 현안 질의가 잇따랐다. 국회 두 개 상임위원회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을 각각 불러 의혹 논란을 따져 묻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는 국방위와 법사위에 그대로 보고됐고, 대통령실의 외압을 축소하려는 것이라는 야당 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
외압 논란에 중심에 있는 국방부 지휘부는 전면 부인했다. 채 상병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 장관은 “누구도 특정인 제외 지시 없었다”고 했다. 신 차관도 “해병대 사령관에 문자 보낸 적 없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건이 이첩되면 경찰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방부는 ‘해병대 조사결과에 특정인과 혐의가 명시돼 있어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경찰에 제출된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를 회수해 직할 최고위 수사기관인 조사본부에 재검토하도록 했다. 그러나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가 8명 모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던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는 크게 달라 사건 축소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본부 재검토 명분은 해병대 조사결과가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날 발표한 재검토 결과는 논란이 된 사단장을 포함한 현장 지휘관에 대한 일부 진술이 상반되는 정황도 있는 등 기록만으로는 범죄의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된다고 명시했다. 수사를 담당할 민간 경찰에게 오히려 가이드라인을 에둘러 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 혐의자 특정된 인원을 대폭 축소하는 시그널을 경찰에 명확하게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민간 경찰수사에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방부는 아직도 군이 민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가 경찰에게 가이드라인을 준다고 하는데, 오히려 국방부 장관 직할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수사보고서를 회수해 재검토한 국방부가 결과적으로 사단장 구하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상됐던 것처럼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크게 달라진 결론을 내놓아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해병대 전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항명 혐의로 수사 중인 국방부와 대통령실 등의 ‘외압’ 논란은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와 국회 국방위원회 및 법제사법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가 눈에 띈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우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안일한 생각을 꼽았다.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 장관은 국방부가 결론을 번복한 배경에 대해 “8명 모두를 업무상 과실치사 범죄 혐의자로 판단한 조사 결과는 과도한 것으로 판단됐다”며 “죄 없는 사람을 범죄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장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정당한 장관의 지시였다는 답변이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장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특정인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 장관의 발언은 혐의 적용에서 배제된 대상에 대해 자체적으로 ‘죄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이 오히려 경찰 수사에 상당 부분 영향을 줄 수 있거나, 주려고 했다는 의도가 강하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지난 7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법적으로 군은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물론 혐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사건을 인지한 즉시 조사 결과를 그대로 민간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게 역할의 전부다. 그 어떤 판단이 개입해서 안되는 것이다.
국방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군의 의견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럼 “왜 다른 의견을 이첩하기로 했느냐”고 묻자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 안 미친다는 가치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며 두리뭉실하게 답했다.
어찌됐든 이 장관은 본인의 정당한 직무와 지시라고 하지만, 그냥 이첩하면 되는 것을 결재 후에 이를 번복하면서 조사를 담당한 해병대 수사단과 마찰을 빚으면 스스로 신뢰를 잃어 버린 셈이다.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해도 야당 측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이다.
다음으로 채 상병 사망의 단초가 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지휘 책임 관련한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다. 조사본부는 수색활동과 관련된 지휘계선에 있거나 현장통제관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4명은 문제가 식별됐다고 명시했다. 단어를 순화해서 표현했지만 직·간접적인 지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은 현장 안전에 관한 지휘관심을 소홀히 해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전을 실시했고, 사단장 작전지도 간 지적사항 등에 예하 지휘관이 지휘 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전파)하게 돼 사고자가 수색작전 임무수행 중 사망하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서 실제 작전통제권한을 보유했던 것은 육군 50사단장이다. 해병대 1사단장이 현장에 파견나간 장교와 장병에 대한 지휘와 작전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빌미가 돼 채 상병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게 해병대 수사단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도 임 사단장의 혐의를 특정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했지만, 지휘 및 작전 지시 탓에 최종 지휘 책임자인 해병대 1사단으로서 법률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해병대 수사단 판단에 대해 수긍한 셈이다. 물론 임 사단장 지휘 책임이 채 상병의 사망에 어느 정도까지 법률적 책임이 있는지는 수사를 담당할 민간 경찰과 이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의 몫이다.
이 대목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임 사단장은 지난달 28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채 상병 사망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사실상 본인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김 사령관도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져 채 상병 사망 사건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듯했다. 어찌된 것인지 수사 외압 논란이 커질수록 임 사단장은 존재를 꼭꼭 감추고 있다.
이런 탓에 임 사단장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 전역 후 민간인 신분의 경찰 수사를 받는다면 외압·항명 사태가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해병대 사령관인 3성 진급을 포기하고 해병대 장군답게 직을 내려놓는다면 해병대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단장이라는 인상과 함께 혐의 부분에 대한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사단장 국방부 지휘부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의 입장 표명이 늦어질수록 여러 국면에서 잘못된 선택이라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임 사단장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비서관실 행정관, 이종섭 장관은 외교안보수석실 행정관,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비서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알려지면서 외압 의혹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해병대 수사단과 조사본부의 공통된 인식이다. 임 사단장은 지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로 민간 경찰의 수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휘 책임에 따른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한 임 사단장의 지휘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워 법적 책임을 피할 수는 있어도, 군 내부의 징계 조치는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채 상병 사망에 대해 법률적 책임은 아니더라도 지휘 책임이 분명한 만큼 무조건 징계 조치할 수 밖에 없다”며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장을 보직해임 및 항명죄로 입건해 논란을 축소하려고 하면서, 정작 지휘 책임이 드러난 사단장에 대한 거취와 징계 조치를 조속히 진행하지 않는다며 외압 의혹은 수그러들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도 국방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법원·대검찰청·경찰청도 해병대 수사단 외압 논란이 파장이 커지고, 자칫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군검찰수사심의원회 참여할 위원 추천을 거부했다.
박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와 관련한 공정성 여부를 따지고 싶다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즉각 수용했다. 반면 법원과 검찰에 이어 경찰까지 ‘항명 사건’을 다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위원을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법원·검찰에 이어 경찰까지 위원을 추천하지 않기로 하면서 박 전 수사당장의 항명 여부를 심의할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구성이 불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변호사 등 군 인권 전문가 2명을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사법부와 수사기관이 모두 불참할 경우 전문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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