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4개월 간병비로만 2천만원…"간병 급여화 논의 시작해야"

윤성우 2023. 8. 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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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동훈 의사가 환자를 보고 있다. [촬영 윤성우.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윤성우 인턴기자 = 지난해 수원에 사는 A(53)씨의 남편은 코로나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졌다. 체중이 85㎏가 넘고 의식이 저하된 남편을 씻기고, 체위를 바꾸고, 기저귀를 가는 것을 도저히 홀로 할 수 없어 지난해 4개월가량 간병인을 고용했다. 총 2천만원 가까운 금액이 간병비로 빠졌다. 1년이 넘는 간병 생활로 벌이도 끊겨 예금이나 부동산 등 기존 자산을 처분하며 지내고 있다. 그는 "병원비에 간병비까지 엄청난 지출에 심적, 재정적 공포가 상당하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간병 지출을 버티지 못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간병 파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환자의 질병에 가족들은 큰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하루 11만∼15만원, 매달 400만원 수준의 간병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는 미비하기 때문이다.

모든 간병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의 몫이다. 의료법에는 간병인에 대한 규정이 없고, 따라서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금액도 없다. 간병인은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으로서, 개인과 일시적으로 계약을 맺고 가정 내에서 청소, 세탁, 주방일을 제공하는 '가사도우미'와 유사한 지위다. 반면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 이용자의 부담이 훨씬 적다.

의료법상 간병인에 대한 규정이 없고 자격 요건도 없으니, 간병의 전문성과 품질이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올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정모(27)씨는 "환자가 도움을 요청해도 반응 없이 잠만 자는 간병인도 있었다"며 "나중에 병원에 갔을 때 옆에 있는 환자가 귀띔해주고 나서야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간병인 중개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나 표준계약서가 없어 계약과 다른 요금이나 서비스 제공으로 인한 갈등도 발생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간병인 관련 소비자 불만 236건 중 안내받은 금액과 실제 간병인이 요구하는 금액이 다른 '요금 관련 불만'이 45건으로 가장 많았고, 환자 관리 부실 등의 '불성실 이행'이 37건으로 뒤를 이었다.

정부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간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5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시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가 간호와 간병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보호자가 환자를 병상에서 돌보지 않아도 된다. 요금도 하루 1만∼2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에서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합병동에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만 받고, 손이 많이 가는 중증 환자는 일반병동에 입원시켜 사적 간병인을 쓰게 하는 역선택 문제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간병이 절실한 중증 환자가 오히려 통합병동에 입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커지고 있다. '간병 파산'은 물론, 가족을 간병하는 보호자가 환자를 살해하는 '간병 살인'이나 간병인이 환자 항문에 배변 패드를 집어넣은 사례와 같은 '간병 범죄'도 종종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간병비 규모는 2014년 6조8천억원에서 2018년 8조원으로 증가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간병수요 증가와 고령화로 간병비 지출은 증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문가들은 간병비 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의 간병비 지원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도도 높아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 명 중 65.2%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간병비 부담'을 꼽았다. 응답자 75.5%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고, 80.9%는 간병비 재원을 '국가와 환자(보호자)가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간병 급여화를 위해 하나씩 기준 마련해 나가야"

지난 15일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 노동훈 의사의 모습 [촬영 윤성우. 재판매 및 DB 금지]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은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간병 제도가 간병인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요양병원 같은 의료체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노 위원장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간병 급여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 1월까지 요양병원을 운영했고, 현재는 치료와 간병이 필요한 환자를 진료하러 직접 방문하는 '왕진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10년간 여러 환자·보호자와 간병인을 마주하고 간병 제도화 논의를 이끄는 그에게 현재 간병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 현재 간병 시스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지금까지 간병에 대한 제도가 전혀 없다. 요양시설에서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 요양보호사의 간병을 저렴하게 이용하다가 치료받으러 병원에 오는 순간 매우 비싼 사적 간병인을 써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생태계가 한 번 만들어져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니까 '땜질' 방식의 대안만 내놓고 문제가 커지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꼬인 실타래를 단계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여러 부처·기관·협회 간 긴 호흡의 협의와 논의가 필요하다.

-- 간병인들의 열악한 처우가 환자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나.

▲ 당연하다. 요양병원에서는 금전 부담을 덜기 위해 6∼8명의 환자가 중국 교포 간병인 한 명을 쓰는 경우가 많다. 간병인 홀로 월 270만 원을 받으며 한 달에 이틀 쉬고 24시간을 일하는 거다. 단순 셈으로 자는 시간이 없더라도 환자 한 명에게 3∼4시간밖에 쓸 수가 없어 청결 상태가 나빠지고 낙상 등 여러 사고가 발생한다. 간병인의 전문 자격이나 교육도 없어서 정서적인 돌봄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 대안으로 요양보호사를 간병인으로 일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 요양시설은 돌봄이 필요한 곳이고, 요양보호사도 그에 맞는 교육이 이뤄진다. 병원은 돌봄, 간호, 치료가 모두 필요한 곳이어서 요양보호사와는 다른 교육훈련과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급여를 국가가 일부 책임지면 기존의 요양시설 등에서 반대가 심할 것이다. 그에 대한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

--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나.

▲ 현재 한국의 중위연령이 부모님을 모시는 나이가 됐고, 고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간병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의 재원이 일부 간병비에도 지원돼야 한다. 간병비 급여화가 이뤄지려면 일단 간병에 대한 명확한 근거 규정과 정의가 우선 필요하다. 전문적인 교육과 자격증 제도도 있어야 한다. 더불어 외국인 간병인을 모집하고 양성할 방안과 AI 간병 등 기술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문제를 '땜질'하는 임시방편의 해결책으로는 미래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 간병비 급여화로 인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 AI 간병을 이용하면 움직임, 심박, 호흡 등이 자동으로 측정된다.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야간에는 당직으로 한 명의 간병인이 여러 병상을 보는 방식을 도입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간병비를 국가가 부담할 필요는 없다. 국가와 국민이 각각 50%씩 부담하는 안도 좋을 것이다. 또한 불필요한 지출은 줄일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대학교에서부터 요양병원,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임종 선고를 했다. 안타까운 죽음은 단 하나도 없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이분들을 잘 돌볼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현재 간병 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du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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