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과보호와 욕망 과잉이 불러온 교육계의 위기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따지면 인간으로부터 받는 요인이 가장 크다. 기계나 날씨, 반려동물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트라우마로 남지 않지만 타인에 의한 지배,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욕 등 타인과의 갈등은 큰 스트레스와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교직은 성장기의 미래 세대가 나아갈 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직종이다. 인간관계가 수평적이어서 교직원 간의 갈등은 거의 없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요인으로 생기는 스트레스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스스로 삶을 버렸다. 무엇이 스물세 살의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 행동을 일으킨 학생과 관련해 학부모가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는데, 고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던 필자는 학부모의 항의성 전화에 극심한 심리적 불안과 압박감을 느껴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본다.
한국교총의 '교권 침해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가 전체의 71.8%(8344건)였다고 한다. 각종 교육 단체에서 온라인으로 수집한 교권 침해의 수많은 사례 중에는 자녀가 졸업(혹은 진급)할 때까지 결혼이나 임신을 연기해 달라, 교사 자격이 없다, 교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등 모욕적인 언사도 있다. 또 사회적 지위와 재력, 학벌 등으로 압박하는 사례도 보인다. 교사들이 악성 민원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면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을 겪게 되고 극단적 선택까지 할 수도 있다. 정경희 국회의원에게 교육부가 제출한 '연도별 공립 초·중·고교 교원 자살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자살 교사가 100명(매년 20명 꼴)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학년부장을 맡았을 때 학부모가 교무실에 '난입'했던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문을 벌컥 열고 "아무개 선생이 누구야? 이리 나와!" 이러면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거친 욕설을 쏟아 냈다. 사소한 문제였고 담임교사와 상담한 뒤 사과하고 돌아갔지만, 옆에 자녀까지 대동하고 학교를 뒤집어 놓았던 충격을 '난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옆에서 지켜본 딸에게 자기를 지켜주었다고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에 남을까? 교사 자격이 없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다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 과연 학부모 혹은 엄마·아빠의 자격이 있는지 따지고 싶다.
요즈음은 이런 민원이 대학과 군대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인 자녀의 수강신청, 휴학이나 전과 등 학적 변동과 관련한 문의를 학부모가 직접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군대에도 우리 아이가 몸이 아프니 훈련에서 빼달라거나 급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의 민원이 종종 접수된다고 한다.
이런 유난스러움은 과보호와 욕망 과잉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부모의 욕망으로 특목고와 명문대학, 번듯한 직장까지 이어지는 자녀의 인생을 설계해 놓고 어려서부터 관리하기도 한다. 자기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녀에 대한 본능적 애정은 누구나 있어서 자녀가 불편함 없이, 풍족하게 성장하도록 챙겨주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문제다.
야구에 빗대자면 홈런을 쳐서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부모의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녀는 우울감이나 열등감에 빠지고, 부모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사건건 챙기고 간섭하면 자립심은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모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 보살핌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캥거루족이 될 수 있다. 홈런은커녕 타석에 서지도 못하거나 병살타를 쳐서 부모의 공든탑도 허물어 버릴 수 있고, 자녀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노후마저도 고단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숱한 문제 상황과 맞닥뜨린 자녀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면서 혼자 설 수 있도록 하고, 쓴맛 단맛 보며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도록 자녀들 삶의 접촉면을 넓혀 줘야 한다. 결핍과 불편함을 겪어 보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을 모르면 나약한 사람이 된다.
교사 사망사건으로 해당 학교와 세종의 교육부 청사 주변을 둘러싼 수천 개의 근조화환은, 교권 추락에 대한 애도이자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애도이다.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학부모의 과도한 개입으로 모멸감을 느낀다면 자녀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위기이다. 자녀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 정용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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