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우리도 진짜 1등 한번 해보자
바야흐로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은 2050년까지 연 85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분석한다. 이런 노다지를 가만둘 나라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양자법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은 조(兆) 단위 기술개발을 통해 양자 기술 연구 분야를 지원하고 있고, 구글·IBM 등 민간 기업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투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투자는 더욱 거세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양자굴기'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암호화, 무기 재료 등 군사적 이용까지 염두에 둔 양자 기술개발에 약 1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양자 컴퓨터 개발 분야에서 압도적인 1등이다. 구글은 2019년에 53큐비트(qubit·양자 정보 기본 단위)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개발했고, IBM은 올해 1000큐비트, 2025년엔 4000큐비트 이상을 선보일 계획이다. 반면 중국은 투자 규모에 비해 초라한 10큐비트 수준의 '첸스'라는 양자 컴퓨터를 작년에 공개했다. 하지만 중국의 실제 기술 역량은 베일에 싸여 있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만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1년 미 상무부가 중국의 양자 관련 기업들을 제재한 것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도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양자 기술을 선정하고,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도체 기술에 안주하며 양자 기술개발에 늦게 뛰어든 것도 사실이다. 기술후발주자가 선두권에 서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투자 규모 역시 미국과 중국에 비하긴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양자 시장을 리드하자는 목표는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장기 중 하나가 추격형 기술개발이다. 메모리반도체 기술은 미국과 일본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됐고, 조선,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이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 시장은 다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토끼는 낮잠을 잘 생각이 없어 보인다. 행여나 거북이가 앞지를까 봐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모양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예전처럼 따라잡기식 기술개발로는 선도국을 추격하기 어렵다. 똘똘한 기술개발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양자컴퓨팅 분야는 아직 극복해야 할 난제 기술이 무수히 존재한다. 양자 컴퓨터의 실용화를 위해선 큐비트 수 증가 등 성능 향상에 필요한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양자 잡음에 기인한 양자 컴퓨터 오류를 제거하는 기술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구글은 양자 컴퓨터 오류를 줄이기 위해 소프트웨어적인 기술개발에 매진하며 성과를 냈지만 실용화까지 갈 길은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새로운 시각에서 양자 컴퓨터 오류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바로 양자 오류 내성을 원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위상초전도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위상큐비트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미 관련된 이론적 연구는 진행된 바 있으며, 실제 후보 양자물질을 합성하고 기초물성을 시험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연구진들은 이 물질이 개발된다면 단번에 무오류 양자 컴퓨터 분야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관련 연구 수행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은 아쉽게도 내년도 국가 R&D 예산에 반영되고 있지 않다. 기술 개발의 성패는 타이밍에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 작은 규모의 예산도 배정하지 않은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우리 연구원은 이미 한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세계 최초로 소형 일체형 원전인 'SMART'의 표준설계인가를 확보해놓고도 기술 실증을 하지 못했다. 시장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 뼈아픈 과거다. 단지 5-6년 전에만 'SMART' 실증을 추진했어도, 전 세계적으로 수출 계약이 잇따랐을 것이다.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전략적 투자가치가 높은 기술 분야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무오류 양자물질이야말로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1등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일지도 모른다.
이영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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