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나눠갚게 하라더니"…당국 오락가락에 은행은 '당혹'[50년 주담대 논란]②

신병남 기자 2023. 8. 2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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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서 4일간 5000억원 팔려…당국, 은행에 "대출 줄여라"
원인은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따로 있는데…정책 일관성 어디에
서울 시내 우리은행에서 시민이 상담을 하고 있다. 2023.5.3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신병남 기자 = 정부로부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 확대 원인으로 지목되자 은행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 정책에 맞춰 초장기 주담대를 통해 차주 빚 부담 완화에 도움이 되려 했으나 몇 달 만에 말을 바꿨다는 이유에서다.

◇나흘간 5000억원 팔린 '50년 만기 주담대'…금융당국 "대출 줄여라"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농협 등 4개 은행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한 지난달부터 이달 14일까지 1조7490억원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14일부터 상품 판매를 시작해 집계에서 제외됐다. 지난 10일까지 1조2379억원이 취급된 점에 비춰 이달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 동안에만 5111억원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50년 만기 주담대가 인기를 끄는 것은 대출 만기가 늘어나면 차주가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은 줄어들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따른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 때문이다.

반면 이 같은 효과를 금융당국은 'DSR 우회'라고 평가하며 최근 가계대출 확대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17일 국내 17개 은행 은행장을 소집해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으며, 오는 10월까지 은행권 가계대출 실태를 점검하기 위한 현장조사에 들어간다고 전달했다.

감독당국이 실태조사까지 예고하자 은행들도 행동에 들어갔다. 주요 은행 중 가장 먼저 관련 상품을 취급(지난달 5일)한 농협은행은 이달 말 판매를 종료할 예정이다. 당초 2조원 한도로 기획된 이 상품은 고객 반응을 살펴 한도를 조정하려 했으나 예정된 판매 규모를 지키기로 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아직 추가적인 50년 만기 주담대 중단 계획을 밝힌 곳은 없으나 동참하는 은행이 나온다면 금방이라도 확산할 분위기"라며 "이미 감독당국에서 직·간접적으로 판매 추이에 특히 신경을 써 달라고 전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내부통제 강화 등을 위한 은행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8.1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취약차주 지원 나서라던 정부…"'DSR 우회' 활용 지적, 납득 어렵다"

50년 주담대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은행들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50년 만기 주담대(초장기 주담대)는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금리 상승기 취약 차주 부실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을 청년 및 신혼부부에 한정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 주택금융공사가 5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하면서 시장 변화가 유도되기 시작했다. 은행 중에서는 수협은행이 지난 1월 가장 먼저 상품 출시에 나섰다.

은행권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상환 기간이 길어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게 도입 시 정부 논리"라며 "DSR 규제를 우회한다는 지적은 상품 기본 구조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은행들이 만 34세 이하로 가입 연령을 제한하지 않는 등 초장기 주담대 도입 시 걸었던 조건사항을 지키지 않은 점을 은행들의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5대 은행 중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나이 제한을 걸지 않고 있다. 여기다 초장기 상품에 적용할 차주의 미래소득 산정기준 등도 살핀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이 이사 등 만기까지 상환하는 경우는 적다고 반박한다. 실제 금융당국도 하반기 대환대출 인프라에서 주담대를 취급하겠다고 하는 등 20~50년 다양한 만기와 금리를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제공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모습. 2023.7.28/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부동산 규제 완화·매수 심리 회복 등 원인 따로 있는데…정책 일관성 어디에

은행권 일각에서는 당국 가계대출 관리 접근법이 '땜질식'에 그치고 있단 평가도 나온다. 가계대출 급증의 최근 '집값 바닥론' 등 부동산 매수 심리 확산과 정부 입김에 따른 대출금리 안정이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간과한다는 이유에서다.

KB부동산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증감률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작년 6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주 기준 전주 대비 0.03% 오르면서 1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전매제한 기간 완화, 생애 최초 주담대 비율(LTV) 상향 등 규제 완화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규제 일부가 완화됐고,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상품이 부동산 매수 심리를 자극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차주 부담 완화를 이유로 주담대 금리 상단이 연초부터 7% 아래로 강제되고 있는 점도 꼽는다. 정부 개입을 통해 가계대출 잔액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겠지만, 언제 또 다른 이유로 다시 상승할지 알 수 없다며 은행들은 토로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 반년 만에 31조원이 공급되는 등 가계대출 확대를 주도한 게 사실"이라며 "50년 만기 주담대 확대의 이면에도 이런 특례보금자리론 판매가 자리하는데, 이 상품군만 문제로 지적받는 건 당혹스럽다"고 했다.

fellsic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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