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고 배운다”던 클린스만은 어디에…빡빡한 美→英 일정, 약속한 ‘국내 상주’는 결국 뒷전
[스포티비뉴스=박건도 기자] “K리그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한다. 몇 달 뒤 같은 주제로 대화했으면 좋겠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부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지난 3월 대한축구협회(KFA)는 과거 독일 국가대표팀과 미국 국가대표팀 등을 지휘했던 클린스만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달 9일 클린스만 감독은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서 진행된 신임 감독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다웠다. 날카로운 질문도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0년 11월 헤르타 베를린 감독직을 떠날 때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은 질문을 듣더니 미소지으며 “사람은 실수한다. 항상 배운다. 다시는 SNS로 사임을 발표하지 않겠다. 경험이라 생각한다. 항상 옳은 결정을 하기 어렵지 않나. 실수를 줄여나가겠다”라며 미소지었다.
자신감도 넘쳤다. 높고도 구체적인 목표를 당당히 드러냈다. 최초 목표는 내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4강 신화’를 다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승이 중요하다. 인천공항에서 얘기했듯 아시안컵 정상이 첫 목표다”라며 “한국은 2002 한, 일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을 이룬 바 있다. 나도 한국에 있었다. 선수들에게 높은 목표를 잡고 할 수 있다고 자신감 심어주겠다. 4강을 목표하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임 초기 계획도 전했다. ‘학구파’ 지도자임을 강조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당시 나폴리), 이강인(파리 생제르망, 당시 마요르카) 등 유럽파뿐만 아닌 K리그 선수 파악에 힘쓸 것이라 약속했다.
갓 지휘봉을 잡은 만큼 전력 분석이 덜 되었을 법했다. 40년 축구 인생을 자부한 클린스만 감독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미국 등 해외 경험도 풍부한 클린스만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들의 실력을 봤다. 어느 지역이든 예선은 쉽지 않다. 예선 통과에 집중하겠다. 아시아팀들은 배워나갈 예정이다. 미국 대표팀에서 6년 동안 지역 예선을 많이 배웠다”라며 본인이 ‘학구파 지도자’ 임을 강조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국내파 선수들에게도 국가대표팀 승선 기대를 품게 했다. 직접 K리그 현장을 찾겠다는 약속이었다. “40년 넘는 경력 덕에 어린 선수의 기술은 10분이면 파악 가능하다”라며 베테랑 감독으로서 자신감도 드러냈다. ‘현장 검증’을 다짐한 클린스만 감독은 “당연히 한국에 거주하겠다”며 “K리그는 아직 봐야 한다. 배워야 한다. 몇 달 뒤 같은 주제로 대화했으면 좋겠다”라고 직접 말했다.
실제로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부임 초기엔 그랬다.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 3일 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를 시작으로 총 10경기 K리그1 경기를 관전했다. 클린스만 감독 데뷔전인 3월 말 A매치에서는 2022 카타르월드컵 멤버 위주로 소집했다. 부임한 지 한 달이 안 된 만큼 기존 전력 파악이 우선시됐다.
3개월이 지났다. 클린스만호는 페루와 엘살바도르를 만날 예정이었다. 깜짝 발탁도 있었다. 당시 K리그에서 두각을 보인 안현범(전북 현대,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이 A대표팀 부름을 받았다.
클린스만호 사단의 평가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6월 A대표팀 명단 발표 후 안현범에 대해 “아직 직접 경기를 보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마이클 킴 코치와 차두리 어드바이저가 국내 현장을 쏘다닌 덕이었다. 물론 안현범은 A대표팀 발탁 당시 국내 정상급 기량의 윙백으로 통했지만, 실제로 클린스만 감독의 관전 목록에 제주 경기는 6월 10일 울산전이 유일했다.
감독 스스로 파악이 안 된 선수였던 탓인지 클린스만은 페루와 평가전에서 안현범을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했다. 안현범의 최대 장점인 폭발적인 스피드와 공격력을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그간 클린스만 감독은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벨기에 등을 쏘다니며 해외파 점검에 집중했다. 원석인 홍현석(벨기에)과 박규현(디나모 드레스덴, 독일)을 첫 발탁 한 이유가 됐다.
한국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지 반년이 다 되어 간다. 2무 2패, 단 한 번의 승리도 없었다. 비록 선임 초기라고는 하나, 비교적 약체라 평가받는 엘살바도르(75위)와 경기마저 1-1로 비겼다. 역대 외국인 감독 중 부임 후 첫 승리를 거두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와중에 ‘원격 지휘’ 논란까지 대두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6월 A매치 후 한 달간 해외 휴가를 떠난 뒤 주로 해외에 머물고 있다. 자선 행사 등 개인 사유로 유럽을 향하거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임 조건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한국 상주 조건’이 무색해졌다. 지금도 미국 자택에 머물고 있다. ‘사이버 감독’이라는 오명 속 17, 18일 KFA 출입기자단과 이틀에 걸쳐 나눈 화상 기자회견에서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마이클 킴 코치, 차두리 어드바이저와 소통하고 있다”라며 “한국 사람들도 일에 미쳐있지만, 나도 워커홀릭이다. 국제적 경향을 파악하고 상대도 분석하고 있다. 결코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K리그는 한창 시즌 중이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9월 A매치까지 한국에 없다. 영국 웨일스에서 국가대표팀에 합류 예정이다. 국내파 발탁은 6월에 그랬듯 국내 현장을 쏘다닌 마이클 킴 코치와 차두리 어드바이저의 의견에 무게가 쏠릴 듯하다. 안드레아스 쾨프케와 파울로 스트링가라 코치는 유럽에서 해외파 선수 점검에 집중했다.
우승을 자신한 아시안컵 약 두 달 전부터 직접 국내 현장을 돌아볼 예정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7, 8월 일정은 KFA와 계약 전 합의 된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이유”라며 “10, 11월은 한국에 머물 것이다. 아시안컵전에 국내파 위주 훈련도 계획 중이다”라고 향후 일정을 전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대표팀이다. 주요 선수들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한국 대표팀이 사상 최고 성적을 노릴 적기라 보는 시선이 적잖다.
하지만 3년 뒤 월드컵까지 원석 발굴은 뒷전인 듯하다. 신임 감독 체제에서 새로이 기회를 받고 A대표팀의 새로운 무기로 성장할 선수는 국내에서도 국제무대 경쟁력을 키우고 있었다. 카타르월드컵 핵심이었던 김문환과 조규성(당시 전북), 우루과이전 맹활약한 나상호(FC서울) 등이 그랬다. 벤투 감독이 4년 넘게 공들인 대표팀의 전체적인 틀이 클린스만 체제에서 일관성 없이 흘러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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