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철근 누락 아파트, 누가 살고 싶겠어요?

채신화 2023. 8.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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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명 알려지고 보수·보강해도 불안
이권 카르텔 잡기? 입주자 보상부터
LH 주택이 희망인데…서민 두번 울려
<어느 lh 아파트 입주자의 가상 일기>
LH 아파트 입주자들을 취재한 후 현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봤다.

'나 같으면 무조건 이사간다'

오늘 또 속 없는 소리를 들었다. 'LH 철근 누락' 사태가 터진 이후 단지명이 알려지자 지인들을 비롯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해당 단지에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며 성화다. 입주자로선 가슴이 답답한 얘기다. 누군 살고 싶냐고!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난 4월 인천 검단에서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남 일 같았다. 이후 내가 입주한 아파트에 무량판이 적용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주차장 이용이 꺼려졌고, 일부 철근이 누락됐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자 집에 있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LH가 지난달 31일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아파트 91곳 중 철근 누락 등 문제가 있는 15곳의 단지명을 공개했을 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관련기사:철근 빠진 LH 아파트 15곳 공개…원희룡 "완벽 보강할것"(7월31일)

철근 빠진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낙인'이라도 찍힌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미 입주해서 살고 있는데 당장 짐을 싸서 이사를 갈 순 없었다. 그래도 정부가 조속히 보수·보강을 시작해 안전에 문제 없게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터라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신뢰는 금방 무너졌다. LH는 철근 누락 단지를 공개한 지 열흘 만인 8월9일 조사 대상에서 10곳이 빠졌다고 알렸고, 8월11일엔 한 곳이 더 누락됐다고 밝혔다. 누락 원인은 '단순 실수'였다. 

빠진 단지까지 총 102곳을 조사한 결과 철근 누락 등 문제가 있는 단지는 15곳에서 20곳(1만8150가구)으로 늘었다. 추가된 5곳은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기존에 발표하지 않았던 단지들이다.

LH 무량판 철근누락 아파트(20개) 현황./그래픽=비즈워치

혹시 내가 사는 아파트도 발표된 것보다 철근이 더 빠졌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데도 축소 발표한 건 아닐지 불안해졌다. 결국 문제가 발견된 20개 단지에서 18일 만에 47건의 계약 해지 신청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모두 나와 같은 임대주택 입주자 또는 입주 예정자였다. 임대의 경우 청약통장 사용에 따른 불리한 사항 등이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이사가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6일 "공공임대 입주민(입주 예정자 포함)에 대해서는 계약 해지 시 발생하는 위약금을 면제해주고, 계약 후 입주민이 낸 보증금도 이자를 포함해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공공분양도 계약해지권 등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상 방안이 확정된 건 아니다. 

정부는 △계약해지 시 위약금 면제 △이사비 지원 △국민임대 계약자 감점 면제 △대체 임대주택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이한준 LH 사장 결재를 거쳐 최종 확정안이 나올 예정이다.▷관련기사:철근 누락 아파트, 보상안 촉각…건설사는 '술렁'(8월8일)

하지만 아직 검토안일 뿐 확정안이 아니니 입주자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혼란스럽다. 주민설명회나 입주 단지 콜센터 등에 문의를 해봐도 해당 내용은 '검토' 중이라고 안내할 뿐이다. 

철근 누락 아파트 보상안(검토안)/그래픽=비즈워치

섣불리 움직였다가 향후 정부가 얘기했던 보상안들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낭패다. 직장과의 거리나 임대료 등 자금 계획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한 단지라 이사를 마음 먹기도 쉽지 않다.  

입주자 커뮤니티 등을 보면 나처럼 울며겨자먹기로 계속 거주하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살면서 안전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여전하다. 

사회적으로도 '무량판 공포', '부실시공 공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두고 '건설 이권 카르텔'을 겨냥하고 있다. 시공뿐만 아니라 설계, 감리 등 전반에 걸쳐 원인이 있는 데다 그들 사이 LH 전관이 다수 끼어 있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에 평일이나 주말 할 것 없이 LH 전관 문제를 바로 잡겠다며 자료를 내고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 하나 구체적이고 제대로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구난방으로 발표만 해대니 혼란스러울 뿐이다. 

주위에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지인들도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에서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눈에 띄게 오르고 있고 경쟁률도 치열해지고 있는데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였던 LH 아파트가 원활히 공급되기 힘든 상황이라서다. 

하루 빨리 구체적인 대책과 예방책이 나와 내 집에서 편히 쉴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집이 너무 불편하고 불안하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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