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채 상병 사건’ 대대장 2명만 혐의 적용…사건 축소 논란 불가피

박수찬 2023. 8. 2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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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조사본부 발표 내용·파장
“사단장·중대장 등 문제 식별됐지만
해병대 기록만으로는 특정 제한돼”
현장 분석·감식 등 실황기록 불충분
안전시스템 작동 확인 부재 등 지적
警 수사 가이드라인 작용 우려 제기
유족 “재발방지책 수립 지켜보겠다”
법사위·국방위서 ‘외압 의혹’ 공방
김의겸 “수사기록에 ‘죽겠다 생각’ 진술”
성일종 “기록유출 있을 수 있나” 추궁에
李장관 “법적 검토·조치 필요하면 할 것”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가 21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에 대해 ‘혐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단장 등 8명에게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보고서를 회수, 재검토한 국방부가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하면서 사건 축소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고 채 상병 사건 수사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혐의자 압축된 이유는

앞서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 사건 조사 보고서에서 임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방부 조사본부는 8명 중 대대장 2명만 직접적 혐의가 있다고 봤다. 이들은 경북 예천군 수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가 가능하다’는 여단장 지침을 어기고 허리 높이까지 입수할 것을 지시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사단장의 작전 지도 간 복장, 경례 태도, 브리핑 상태 등에 대한 지적 사항으로 예하 지휘관(대대장)이 지휘 부담을 느껴 무리하게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조사본부는 임 사단장과 여단장·중대장·현장간부에 대해 “문제가 식별됐으나 일부 진술이 상반되는 정황도 있는 등 현재 기록만으로는 범죄 혐의 특정이 제한됐다”고 밝혔다. 이어 임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임무 정보를 여단장에게 뒤늦게 알렸고, 현장 지휘관들이 안전대책 강구 등 준비가 미흡한 채 수색을 실시했다고 지적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채 상병과 함께 있었던 중위·상사는 혐의자에서 제외됐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15명으로 태스크포스(TF)를 편성해 기록 전체를 검토했다”며 “8명 중 6명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만장일치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조사본부는 재검토 결과와 해병대 수사단 조사 기록을 원안대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다.
지난 7월 20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 마련된 고 채 상병 빈소에서 해병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국방부 “수사 보완 필요”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검토한 해병대 수사단 사건 기록은 사건 관계인 등 90여명의 진술서와 수사보고, 사망자 검시 결과 등을 포함한 980여쪽 분량이다. 조사본부는 △사고 현장 분석·감식 결과 등 실황 조사 기록의 불충분 △안전관리 훈령에 따른 안전 시스템 작동 여부를 확인한 기록 부재 △현장에서 실제 작전통제권을 보유했던 육군 50사단의 지휘 관계 등에 대한 기록 부재 등을 이유로 보강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조사 기간도 지적했다. 과거 다른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기까지 1∼4개월이 걸린 것에 비해 해병대 수사단은 14일 만에 사건 조사를 종료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11일 만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지난달 30일 이후에도 추가 조사를 통해 140여쪽의 서류가 사건 기록에 추가됐다.
조사본부의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 재검토 결과에 대해 군 안팎에선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온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사건 조사를 맡았다가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대령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축소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는 임 사단장 등 일부 인사의 혐의가 특정되지 않았다. 박 대령 주장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석이나 가치 판단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채 상병의 부모는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에서 “오늘(21일) 오후 4시 조사본부 담당자들이 와서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며 “저희 유족은 향후 경찰에서 신속하고 현명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규명이 되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이 세워지는 것을 고대하고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본지는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 대령에게 입장을 물었으나,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野 “사단장 보호에 대통령실 개입 정황” 이종섭 “누구도 특정인 제외 지시 안 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1일 법제사법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숨진 채 상병의 사건 수사와 관련,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두고 맞붙었다. 민주당은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이 필요하다며 공세에 나섰고 여당은 사건 이첩을 국방부가 보류한 것은 정상 절차였다고 맞받으며 정부 엄호에 나섰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장관을 포함, 그 누구도 특정인을 제외하거나 특정인만 포함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실로부터 지침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 질의에 “대통령실에서 어떠한 지침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외압 주장을 일축한 셈이다. 박 전 단장이 항명 혐의로 입건된 것과 관련해서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한 중대한 군기 위반 행위이자 군의 지휘권을 약화시키고 기강을 문란하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뉴시스
이 장관이 수사보고서에 결재한 것을 두고서는 “해병대 수사단 차원 조사라는 점을 고려해 결재했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직무의 엄중함과 중요함을 다시 인식하고, 서명하는 문제는 신중히 하겠다”고 답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서 제외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오갔다는 주장에는 김 사령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휴대전화를 모두 조사했고,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신 차관도 법사위에서 외압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 전 단장 주장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특검이 필요하다는 피켓을 위원석에 내걸며 공세를 폈다. 법사위 소속 김영배 의원은 “임 사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많다”고 했다. 김승원 의원은 임 사단장이 이명박정부 청와대에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같은 기간 근무한 사실을 거론한 데 이어 신 차관의 총선 출마 이력까지 문제 삼았다. 신 차관은 “임 사단장과 김 차장이 근무하던 비서실은 달랐다. 임 사단장은 문재인정부에서 원스타, 투스타로 진급했다”며 “총선 이야기는 대단히 부적절했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정부 엄호에 나섰다. 장동혁 의원은 군에서 경찰로 사건이 이첩되기까지 평균 65일이 걸렸다는 신 차관 답변에 “이 사건에 있어 굳이 이첩 보류 명령을 어기고 성급하게 보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박 전 단장을 직접 겨냥했다. 장 의원은 “명령이 잘못됐다면 문제를 제기하면 될 것을 득달같이 방송에 나가는 것이 명예로운 모습인가”라고 따졌다. 성일종 의원은 국방위에서 “박 전 단장 말이 계속 바뀌고 있다.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법사위에서 밝힌 ‘수사기록’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수사기록을 갖고 있는데, 병사들이 급류로 인해 휩쓸려가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유상범 의원은 이에 “수사기록이 유출된 것”이라고 따졌다. 국방위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성 의원은 “수사기록 유출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이 장관에게 물었고 이 장관은 “법적으로 검토, 조치가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답했다.

박수찬·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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