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밀수'는 이 살림꾼의 '발견' 덕에 태어났다
'밀수'가 (더) 알고 싶다 - 제작 편
1970년대 해녀들의 밀수 이야기가 관객들 마음에 주단을 제대로 깔았다. 류승완 감독 신작 영화 '밀수'는 쌍천만 기록을 세운 '범죄도시 3'에 이어 올해 한국 영화 흥행 2위, 전체 흥행 4위에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새로운 흥행 보증 수표로 떠오른 시리즈물이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단일 영화로 거둔 쾌거다. 더군다나 한국 상업영화, 특히 대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중년 여성 투톱을 내세운 작품으로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더 뜻깊다.
'밀수'라는 영화의 사실상 시작점이 된 건 외유내강 조성민 부사장의 '발견'이다. 어떤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늘 머릿속에 넣어둘 수밖에 없는 제작자 눈에 '1970년대 여성들의 밀수'가 담긴 기록물이 들어왔다. 매력적인 소재를 발견한 조 부사장은 강혜정 대표, 류승완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밀수'가 탄생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밀수' 배급사 NEW 사옥에서 조성민 부사장을 만나 '밀수' 제작기를 들어봤다. '밀수'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밀수2' 가능성에 관해서도 살짝 물어봤다.
중요한 건 '시나리오': 매력적인 발견부터 '권 상사의 문단속'까지
▷ 류승완 감독은 조성민 부사장이 '밀수'의 시작점이라고 이야기했다. 지역 박물관에서 본 아주 짧은 사료 기록에서 영화가 출발했는데, 그 기록의 어떤 점이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한 건지 궁금하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계속 생각하면서 산다. 우연히 박물관에 갔다가 상장 크기의 어떤 기록 한 줄을 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1970년대에 여성들이 밀수했다는 로그 라인(이야기의 방향을 설명하는 한 문장)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 시대에 '밀수'라고 하면 마약, 남성 중심 범죄라는 알고리즘이 으레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마약 밀수가 아니라 '이게 왜 범죄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사리부터 시계, 연필 등 생필품 밀수였다. 독특하지 않나? 거기다가 여성들이 밀수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 1970년대 밀수가 이뤄졌던 당시를 조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밀수 의뢰가 생활화 됐냐면, 밀수가 이뤄졌던 섬에 사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밀수할 물건을 바다에서 건져서 유통하는 날에는 그 지역 바다가 모두 배로 꽉 찰 정도였다고 한다. 배와 배 사이를 마치 다리 건너듯 그냥 지나갈 정도였다는 거다. 조사하면서 밀수를 많이 했던 섬에 가서 물어보면, 대충 한 2㎞ 정도 되는 지역이 다 배로 찼다고 했다. 그 정도로 밀수가 당연시됐던 시대가 있었던 거다.
▷ 여성들의 밀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자고 했을 때 내부 반응은 어땠나?
항상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서 강혜정 대표님과 류승완 감독님, 나 이렇게 셋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편이다. 이번에도 여자들이 밀수하는 건 못 봤던 것 아닌가 이야기했다. 그때는 여성 영화가 된다느니 남성 영화가 된다느니, 이런 생각은 별로 안 했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뭐 하나만 잘되자' 이런 심정으로 하는데, '해 봅시다'라며 시작된 프로젝트다.
▷ 그동안 한국 대작 장르 영화 중 여성, 그것도 중년 여성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적이 없는 만큼 '밀수'를 제작하기까지 불안은 없었는지, 투자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재밌게 개발했다. 외유내강 내에는 시나리오 완성도에 대한 자체적인 허들이 있다. 특별한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에서 돌파하지 못하면 좋은 캐스팅도 안 될뿐더러 캐스팅이 잘되더라도 결국 시나리오 문제는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류 감독님, 강 대표님, 내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배우를 설득하는 것도 일단 시나리오로 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도 시나리오가 100% 마음에 들어야 서로 후회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변 젊은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본다. 이런 소재에 대해서 흥미를 갖는지 안 갔는지 등 물어보는 과정도 많이 갖는다. 어쨌든 만드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시대는 바뀌는데, 취향이나 트렌드는 아무리 공부한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그 시대, 그 나이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봐야 한다.
그렇게 시나리오도 잘 써야 하지만 결국은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이 영화다. 류승완 감독님이 '밀수'를 하신다고 하면서 좋은 배우들이 함께하게 됐다. 여기에 NEW('밀수' 배급사)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등 모든 게 잘 맞아떨어져서 영화가 탄생했다.
▷ 고민시가 연기한 1970년대 다방 마담 캐릭터인 고옥분을 비롯해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보통 한국 상업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불필요한 노출 신이나 신체 접촉, 러브라인이 없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끄는 지점 중 하나다.
류승완 감독님은 그런 생각이 별로 없다. 그리고 애초에 '밀수'를 설계할 때 러브라인 자체가 구성이 안 됐었다. 조춘자(김혜수)와 권상사(조인성) 사이 분위기는 촬영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권 상사의 문단속'이라고 권 상사가 조춘자를 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자기가 지키고자 한다. 사랑은 안 할지언정 경운기 탄 애들한테 뺏길 수는 없다는 거다.
난 그때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김혜수 선배가 쓰러져 있는 권 상사를 쳐다보며 장도리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에서 사실 약간 놀랐다. 저런 감정이 들어오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철저히 서로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다가 약간 정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권 상사의 문단속' 이후 '이 사람이 날 지켜주네?' 약간 그럴 수 있잖나. 그래서 참 좋은 배우들은 그런 에너지를 알아서 뿜어내는 것 같다.
유일무이 해녀 액션을 위한 준비: 첫째도 둘째도 '안전'
▷ 영화 속 해녀 액션을 두고 류승완 감독은 "수중 장면은 되게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고, 배우 김혜수도 '세계 최초' '유일무이'라는 표현을 썼다. 액션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외유내강이라 해도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수중 해녀 액션을 담아내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액션이라는 게 보는 입장에서는 한 번 보고 넘어가는 거지만, 찍는 입장에서는 그 한 장면을 10번, 20번도 찍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수중 액션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어렵게 생각 안 했는데….(웃음) 결국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감독이 그린 콘티를 어떻게든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거다. 촬영 전 물속에서 와이어 테스트도 해보고, 수조 세트에서 조류(潮流, 바닷물의 흐름)도 한 번 만들어 보는 등 정말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류 감독님하고 손발을 맞춘 지도 거의 17년 정도 되니까 대충 보면 이제 '저분이 뭐 하고 싶어서 저걸 계속 쳐다보고 있구나' 하는 걸 다 안다. 연출자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준비하게 되는 거다. 또 함께 영화 속 액션도 많이 찍다 보니까 액션 쪽에서는 서툴지 않게 됐다. 대신 부상에 대한 부담감은 항상 있다.
▷ 이번엔 배우들의 물 공포증도 그렇고, 지상 액션이 아니다 보니 안전에 대한 걱정이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사실 안전이다. 내가 항상 얘기하는 것도 다치면 안 된다는 거다. 제작팀은 항상 어느 현장이든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근처 제일 큰 병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배우들은 현장이 안전하고, 자신을 지켜줄 거란 신뢰만 생기면 정말 다들 몸을 던진다. 우리나라 배우들이 진짜 대단한 건 물론 CG의 도움도 받지만, 여전히 직접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 에너지가 한국 영화의 힘인 것 같다.
▷ 바다에서 직접 촬영한 장면도 꽤 되는데, 바다라는 게 여러모로 제약이 많다 보니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면을 담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제작자로서도 보다 많은 걸 꼼꼼하게 파악하고 준비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다는 정말 땅하고 다르더라. 바다에 나가서 찍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바다에서 다 찍으려고 했다. 뭐가 어렵겠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어렵더라.(웃음) 물이 제어가 안 되는 거다.
촬영을 도와준 낚싯배 선장님이 파도 지수('선박운항지수'를 말하는 것으로,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안전한 항해를 위해 하루 중 4개 시간대로 구분해 선박 운항 환경을 산출한 지수를 의미한다. 총 4개 레벨로 나뉜다)가 레벨 2(파도가 조금 일며 선박 운항 시 주의가 필요한 단계) 이상이면 바다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 파도가 2m 정도 된다는데, '그 정도면 뭐 괜찮겠지' 하고 막상 배 타고 나가서 2m를 보면 한 4m로 느껴진다. 나가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위험해서 바다 촬영은 거의 다 따라 나갔다.
여기에 바다 위에서 배도 고장 나서 고쳐서 사용하고 또다시 고치고…. 그래서 사실은 많이 위험했다. 왜냐하면 70년대 배를 구현해야 해서 예전 모델들을 어렵게 구했는데, 엔진도 예전 거였다. 그래서 바다 위에서 고장도 많이 났다. 그럴 때 낚싯배나 어선 다루는 선장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그러면서 당시 밀수에 대한 정보도 많이 주셨다.
▷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만큼 '연안부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 당대 가요들이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가수 장기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곡들도 다 너무 좋은데, 사실 장기하 음악감독한테 좀 놀랐다. 처음엔 류 감독님이 가수 장기하와 해보겠다고 했을 때 가능할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선곡이 많은 영화에 음악감독을 처음 해보신 분이 밸런스를 다 맞출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처음엔 장기하 음악감독님도 호기심을 느끼고 참여해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즐겁게 작업했다. 장기하 음악감독님의 다음 작품 음악도 기대하겠다.
▷ 류승완 감독이 '밀수 2'에 대한 질문에 "이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우니까 1980년대로 옮겨지면 더 재밌는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싶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글이 퍼지면서 화제다. 기대해 봐도 좋을까?
이 정도의 배우들을 데리고 후속편을 하려면 또 많은 결심이 서야 하는데…. 류승완 감독님이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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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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