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란 단어를 말했을 때 보통 마시는 차보다는 자동차를 훨씬 많이 떠올린다. 식사 후 카페에 갈 때도 ‘차 마시러 가자’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차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나 커피에 비해 차가 아직까진 일상 깊숙이 들어오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여기 매일 몇 잔이고 마시는 커피만큼이나 매력적인 차의 향과 맛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차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차라는 세계에 입문하게 해주는 서울의 이색 명소를 소개한다.
오감으로 즐기는 티오마카세, 코코시에나
코코시에나에선 티소믈리에가 엄선한 차와 그에 어울리는 티푸드를 제공한다. 1년에 네 차례 계절별로 메뉴 구성을 달리해 시즌 티 코스를 선보인다. 1시간 20분 동안 오감이 즐거운 티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다.
메뉴에 맞게 달라지는 아름다운 다기와 플레이팅이 눈을 즐겁게 한다. 색다른 차에 어울리는 음식을 맛보면 입이 황홀해진다. 여기에 찻잎을 직접 만져보고 향을 깊이 느끼며 촉각과 후각도 바삐 일한다.
차를 음미하는 동안 티소믈리에의 설명까지 더해지니 오감으로 차를 즐긴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코코시에나의 시에나(Sienna)에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먼저 시에나는 김은지 코코시에나 대표의 영어 이름이다.
또 시에나는 홍차와 비슷한 갈색빛을 띠는 색상의 이름이기도 하다. 시에나 앞의 코코는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붙였다.
계절을 담은 시즌 티코스의 매력
코코시에나 시즌 티코스의 시작은 웰컴티다. 웰컴티의 종류는 그때 그때 다르지만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는 찻잔 안에 가득 담겨 있다. 웰컴티로 쑥차가 나왔다.
정갈함이 느껴지는 새하얀 잔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차가 주는 분위기에 맞춰 찻잔도 달라진다. 동그란 잔부터 뾰족한 잔, 길쭉한 잔 등 차에 어울리는 다기의 모양도 눈여겨보면 좋다.
웰컴티를 한 모금 마시려고 잔을 입 가까이에 댔더니 향기로운 쑥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한 모금 들이켜니 시원한 쑥차의 향이 입안까지 퍼지며 티코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첫 번째 메뉴는 시원한 무화과 잎차와 코코넛 그릭 요거트다. 무화과는 과일로만 먹었지 잎을 활용해 차로 만들 수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무화과 잎차는 우유처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특이한 점은 따로 뭘 첨가하지 않았는데도 코코넛 향이 난다.
그래서 함께 나온 코코넛 그릭 요거트와 정말 잘 어울린다. 코코넛 요거트의 새콤달콤함을 무화과 잎차의 부드러움이 가볍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요거트의 뒷맛을 싹 씻겨준다.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메뉴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차도 몇 잔 더 마시다 보니 두 번째 차인 운남 백차 대은침이 나왔다. 운남 백차 대은침은 보이차 산지인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하는데 수령 100년 이상 된 나무의 새순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 차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은은하다’다.
명도가 낮아 따뜻한 느낌을 주는 흰색 다기에 맑은 색의 차가 담겨 나왔다. 향도 세지 않고 맛도 강하지 않다. 아카시아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입맛을 확 사로잡는 맛은 아니지만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자꾸만 손이 가는 차다.
다음 차는 세작이다. 세작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한다. 잎을 따는 것부터 시작해 생산하는 마지막 과정까지 사람 손을 거친다고 한다.
이 차는 향이 정말 진하다. 차를 우리기 전보다 우려낸 후의 향이 훨씬 더 깊다. 향도 범상치 않았는데 맛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차에서 밤 맛이 난다.
분명 차를 마셨는데 삶은 밤이나 콩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차라고 하면 일반 음료수나 커피에 비해 맛이 밍밍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세작이 그러한 편견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던 사람에게서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세작에 이어 바질 홍차가 나왔다. 바질과 홍차 중 하나만 들어가도 맛과 향이 잘 느껴지는데 자기주장이 강한 재료를 섞어 차를 만들다니 궁금증을 자아내는 조합이다.
홍차의 쓴맛이 살짝 느껴졌지만 떫은맛은 전혀 없다. 오히려 마지막에 바질이 등장해 쌉싸름한 홍차를 살짝 밀어내며 시원한 뒷맛만 남는다.
바질 홍차에 함께 먹는 음식으론 옥수수 콜드 파스타가 나왔다. 발사믹 식초와 바질 그리고 셀러리와 하몽을 곁들였다. 사실 파스타를 만들 때 자주 쓰는 재료들은 아니라 맛이 강할까 봐 걱정됐다.
익숙한 파스타 맛은 아니었지만 시큼한 발사믹 식초와 아삭한 샐러리 그리고 짭조름한 하몽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바질 홍차와 함께 먹으니 어느새 파스타 한 접시를 다 비웠다.
다섯 번째 차는 세작 콤부차다. 콤부차는 효모를 넣어서 발효시킨 음료다. 다이어트나 건강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며 최근 콤부차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발효시켜 만들어 향도, 맛도 모두 강렬하다. 코코시에나에서는 콤부차를 직접 발효시켜 만든다.
멸균하지 않고 제공하기 때문에 유산균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 톡 쏘는 향이 코끝을 제대로 자극한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한 모금 마시니 상큼한 과일맛과 함께 콤부차의 새콤달콤함이 입안에 퍼진다. 매실을 오래 숙성시킨 후 과일을 섞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코시에나의 콤부차를 한번 경험하면 다른 곳의 콤부차는 못 먹을 거라고 말하는 대표님의 자신감이 차에서 잘 느껴졌다.
세작 콤부차는 토마토 베린과 함께 제공한다. 베린은 작은 컵에 담아 먹는 디저트를 의미하는 단어다. 동그랗고 작은 컵에 크림치즈, 으깬 쿠키, 토마토 그리고 라임 제스트를 층층이 쌓았다. 숟가락을 바닥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넣은 후 모든 재료를 한입에 넣어본다.
참 맛있다. 메뉴 하나를 내놓기까지 보통 세 단계를 거치는데 토마토 베린은 첫 시식 때 바로 메뉴로 확정했을 정도다. 크림치즈와 토마토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과 상큼함이 강렬한 콤부차와 만나 맛이 중화되고 조화를 이룬다.
어떻게 이렇게 차와 잘 어울리는 메뉴를 만드는지 그 비법이 궁금했는데 음식 맛을 기록하는 노트가 따로 있다고 한다. 티코스를 짤 때 그 노트를 참고해서 티푸드를 만든다고. 감자튀김과 우롱차, 삼겹살과 홍차는 김은지 대표가 추천하는 환상의 조합이다.
코스의 마지막은 다즐링 이스파한 소르베다. 이름이 길지만 뜻을 알고 나면 어렵지 않다. 다즐링은 3대 홍차 중 하나이며 홍차계의 샴페인으로 불린다.
아스파한은 유명 프랑스 셰프가 탄생시킨 색다른 재료조합을 일컫는 말로 과일인 라즈베리와 리치 그리고 장미가 이에 해당한다.
소르베는 셔벗(‘샤베트’라고도 많이 함)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다즐링 이스파한 소르베는 코스 메뉴 중 유일하게 음식에 차를 넣었다. 입안에서 소르베가 녹으며 4가지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 이국적인 장미의 맛이 하이라이트다. 마지막 메뉴답게 소르베를 먹고 나면 꼭 껌을 씹은 것처럼 입안이 개운해진다.
입안에서 맴도는 차의 잔향처럼 티코스의 여운이 짙다. 정갈함이 느껴지는 매장 인테리어와 조명 그리고 잔잔한 음악. 찻잔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달그락 소리와 통창 밖으로 보이는 운치 있는 풍경이 자꾸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