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들어내고, 묻고…‘친환경 풍력’이라며 백두대간 할퀸 시공사

김현수 기자 2023. 8.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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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산 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 현장 불법 산림훼손
헬기로 자재 운반 약속 어겨…산림당국 “검찰 조사”
환경단체 “벌금 내도 굴착기 공사 이득…제도 허점”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풍력발전단지 계곡 능선부. 녹색연합 제공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풍력발전단지 계곡 능선부에 지난 16일 키 30㎝ 정도의 어린나무들이 빽빽이 심겨 있다. 이곳은 헬기를 이용해 자재를 운반하는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산림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해야 하지만 시공사 측이 굴착기 등을 이용해 골짜기 산림을 모두 베어버렸다. 김현수 기자

지난 16일 백두대간 보호구역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풍력발전단지. 계곡 능선부 골짜기에 키 30㎝ 정도의 어린나무들이 빽빽이 심겨 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있어야 할 곳에는 거대한 강철탑인 강관주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강관주는 풍력발전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쓰거나 팔 수 있는 배전소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설치물로 일종의 전기가 다니는 길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강관주를 가리키며 불법적으로 산림이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곳 강관주는 헬기로 자재를 운반해 주변 산림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공사하기로 하고 설치를 허가받았다.

하지만 시공사 측은 굴착기 등을 이용해 골짜기 산림을 모두 베어버렸다. 중장비를 동원해 길을 내면서 공사를 한 것이다. 이로인해 강관주 주변 폭 3~4m 가량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돼 버렸다.

임재은 산림기술사는 “공기업과 대형 풍력발전업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현장에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생태복원이라고 해봐야 어린나무를 심어둔 정도인데 상당히 미진한 수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풍력발전단지 계곡 능선부. 녹색연합 제공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풍력발전단지 계곡 능선부에 지난달 1일 풍력발전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쓰거나 팔 수 있는 배전소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강철탑인 강관주가 설치된 곳 인근 산림이 불법적으로 훼손돼 있다. 녹색연합 제공

한국남부발전 등이 추진하는 오미산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 현장에서 산림 훼손이 확인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이 사업은 한국남부발전과 풍력발전 분야 업체인 유니슨이 1600억원을 투입해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 일대 9만6000여㎡에 풍력발전기 14대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설비용량 60.2㎿ 규모로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발전단지에서는 연간 9만8700㎿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는 봉화군 전체 가구가 1년 동안 쓰고도 남는 정도다.

문제는 시공사인 유니슨이 중장비를 동원해 길을 닦는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강관주를 설치하면서 산림 1만2900㎡를 훼손했다는 점이다. 생태보전을 위해서는 헬기 등을 동원해 곳곳에 강관주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오미산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생태축이 인접한 곳이다. 멸종위기종인 산양·담비·삵·하늘다람쥐 등의 서식지와도 가깝다.

박 자연생태팀장은 “최근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빈번한 상황에서 해발고도 1000m 가까이 되는 산림을 마구잡이로 훼손한 것은 재해 위험성을 높이는 행위”라며 “고도·입지·경사도·토양 등을 고려한 생태복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주국유림관리소는 해당 문제점을 파악하고 공사중지와 생태복원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불법 훼손된 임목에 대해서는 배상금을 청구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관련자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영주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검찰의 지휘를 받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생태복원의 경우 백두대간수목원과 산림전문가 등의 자문을 거쳐서 생태계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산림을 훼손해도 벌금형에만 그치는 등 제도적인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헬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벌금을 물더라도 굴착기 등을 동원해 공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헬기보다 굴착기를 이용하면 공사기간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이에 대해 유니슨 관계자는 “강관주 설치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와 의사소통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며 “성실히 조사에 임하고 생태복원도 문제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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