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공-더 느린공 뒤에 아주 느린공..커브와 함께 날아오르는 류현진[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류현진이 커브로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은 8월 21일(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 경기에 선발등판해 시즌 2승째를 거뒀다. 류현진은 5이닝을 비자책 2실점으로 막아냈고 삼진 7개를 잡아내는 위력투를 선보였다.
2회말 내야진의 실수가 나오며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2점이나 내줬고 투구수도 늘어났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다시 투구를 이어간 류현진은 지난 등판에 이어 다시 한 번 5이닝 무자책 호투를 펼쳤고 2경기 연속 승리투수가 됐다. 4이닝 노히트 피칭을 펼쳤지만 타구에 무릎을 맞아 일찍 교체됐던 지난 8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부터 14이닝 자책점을 기록하지 않는 철벽 피칭을 이어갔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1.89까지 낮아졌다.
신시내티전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커브였다. 류현진은 시속 60마일대의 느린 커브로 신시내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다. 특히 신시내티가 자랑하는 특급 유망주 엘리 데 라 크루즈를 두 번이나 커브로 삼진처리한 것은 압권이었다.
데 라 크루즈는 3회말 볼카운트 2-2에서 시속 66.2마일 커브가 몸쪽으로 떨어지자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5회말에는 볼카운트 0-2에서 시속 66.8마일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 낮은 곳으로 향하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직전 타석의 헛스윙 삼진이 머리 속에 남아있던 탓에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에도 의심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가만히 서서 삼구삼진을 당했다.
극찬이 쏟아졌다. 현지 언론들은 "전성기를 보는 듯한 투구다. 영리하다. 타자들의 스윙과 욕심을 읽고 있다. 공격적인 타자들이나 어린 타자들에게는 특히 위협적인 투수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토론토 구단은 "몬스터의 마스터클래스(거장이 직접 진행하는 수업)"라는 코멘트로 '피칭의 거장' 류현진이 신시내티의 특급 유망주들을 한 수 지도했다고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지난 2018년 어깨 수술에서 복귀한 류현진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은 것은 '신무기'인 커터였다. 류현진은 토미존 수술 전까지 80% 이상의 공을 포심과 커터, 체인지업을 조합해 던졌다. 포심처럼 보이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배트 중심을 피해가는 커터와 류현진의 전매특허 체인지업이 빗맞은 타구를 양산해냈다.
하지만 이번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류현진은 커브와 함께 강해지고 있다. 류현진은 수술 복귀 후 커터의 구사 비율을 눈에 띄게 줄였다. 지난 14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14%의 구사율을 기록한 것이 올시즌 4번의 등판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팔꿈치 수술의 여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류현진의 커터는 이제 사실상 '마지막 구종'에 가깝게 비중이 줄어들었다.
공이 빠르지 않고 사실상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는 류현진이 포심과 체인지업 '투 피치'로 선발 마운드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 여기에 커브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류현진은 올시즌 경기마다 20% 전후의 커브 구사율을 보이며 커브 비중을 높이고 있다. 평균 시속 약 89마일의 포심과 평균 시속 약 79마일의 체인지업, 그리고 시속 60마일대까지 떨어지는 느린 커브까지, '느린 공, 조금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의 조합이다.
효과는 확실하다. 시속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나 시속 89마일의 공이나 어차피 투수의 손을 떠나 포수의 미트에 도달하는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갈리는 것이 야구지만 89마일 패스트볼이라고 해서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칠 수는 없다는 것. '89, 79, 67'의 조합도 시속 100마일 패스트볼과 시속 7-80마일대 체인지업, 커브의 조합 만큼이나 타자 입장에서는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구속 차이다. 류현진의 패스트볼 구속이 부상 전보다도 근소하게 더 느려졌지만 커진 커브의 존재감이 이를 제대로 보완해주고 있다.
심지어 류현진의 커브는 '그저 그런 공'이 아니다. 부상 전까지는 주로 어쩌다 한 번씩 타자의 허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지 않은 공이었던 것이 아니다. 류현진의 커브는 데뷔시즌 이후 거의 꾸준하게 플러스의 구종가치를 유지해 온 공. 그리고 류현진이 던지는 공 중에 피안타율, 기대 피안타율이 모두 가장 낮은 공이기도 하다. 데뷔시즌과 단 한 경기에 등판한 2016시즌을 제외하면 커브 피안타율이 0.240을 넘은 적이 없고 2할 미만이었던 시즌도 5번이나 된다.
물론 이제까지 사용하던 커브를 그대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니다. 류현진은 원래 시속 72마일 전후로 느리던 커브의 구속을 이제는 평균 시속 70마일 전후로, 여기에 마음만 먹으면 시속 65마일까지도 내려갈 수 있도록 더 낮췄다. 동시에 변화각은 커졌다. 64-68인치 정도였던 낙차는 평균 70인치 이상으로 커졌고 횡 변화각도 평균 1인치 이상 커졌다.
여기에 류현진의 '능구렁이' 같은 수싸움이 더해지며 타자 입장에서는 더욱 골치아픈 공이 되고 있다. 배트가 나올만한 타이밍에는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달아나고 스윙을 망설이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을 타이밍에는 '약올리듯'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 그렇지않아도 보더라인을 넘나드는 전매특허 제구력에 머리가 아픈 타자들 입장에서는 고통이 하나 더해진 셈이다.
2020년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올랐지만 2021시즌 사실상 커리어 로우에 가까운 성적을 썼고 2022시즌 팔꿈치 부상까지 당한 류현진은 냉정히 말해 갈수록 기대감이 줄어드는 투수였다.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에 성적이 하락했고 부상까지 당한 만큼 '평균 수준만 해줘도 큰 보너스'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재활 등판부터 예상을 뒤엎는 호투를 선보였고 복귀 후에는 강점을 더욱 극대화 한 변화된 패턴으로 다시 리그를 놀라게 만들고 있다. 기대감을 점차 키우고 있는 류현진이 과연 남은 시즌을 어떻게 보낼지 주목된다.(자료사진=류현진)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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