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불법 벌목 중단” 룰라, 개발·보호·빈곤퇴치 줄타기 ‘진땀’

박병수 2023. 8. 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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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도전 만만찮은 ‘아마존 보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16일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정치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그의 옆은 부인 호잔젤라 룰라 다시우바. EPA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을 때, 전세계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이 2019년부터 4년 동안 재임하면서 파괴한 아마존 열대우림을 룰라 당선자가 다시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어내 ‘지구의 허파’라 불린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6월 초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30년까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불법 벌목을 모두 중단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다. 그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산림 벌채를 통제하는 데 있어 브라질의 국제적 지도력을 다시 발휘할 것”이라면서 원주민 땅과 환경보호 구역, 아마존 열대우림 전역에서 불법 벌목, 채굴, 사냥, 방화 등 범죄에 대처하는 조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달 초엔 브라질과 함께 아마존 분지를 공유하고 있는 볼리비아·콜롬비아·페루·베네수엘라·에콰도르·가이아나·수리남 등 ‘아마존협력조약기구’(ACTO) 회원국 정상 및 대표들을 브라질 벨렝에 불러 모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아마존 삼림이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남벌을 막겠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

실제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집권 시절 사실상 형해화됐던 환경단속 기구를 복원해 아마존 내 불법 채굴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또 원주민 집단 거주지 6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이곳에서 벌목·채굴을 포함한 개발 행위를 모두 금지했다. 이런 활동은 벌써 성과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룰라 대통령 취임 여섯달 만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벌목이 3분의 1 남짓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 취약한 집권 기반이 부담

이런 초기 성과에도 룰라 대통령이 약속대로 아마존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룰라 대통령의 집권 기반이 취약해 정책 추진력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룰라 대통령은 2003~2010년 첫 집권기보다 의회 장악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브라질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선 진보 정치인인 룰라를 선택했지만, 의회에선 아마존 보호보다는 개발 쪽에 우호적인 보수 정파에 표를 몰아줬다.

룰라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노동자당은 상원 81석 가운데 9석, 하원 513석 가운데 68석을 확보하고 있다. 사회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우호 정당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렇게 모아도 상하 양원에서 친정부 세력은 과반에 못 미친다.

브라질 의회가 이렇게 바뀐 것은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가 갈수록 세를 넓히면서 보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인 가톨릭의 나라인 브라질에서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자는 이미 전체 인구의 30%를 넘겼다. 아직은 가톨릭 신자가 51%로 더 많지만, 2032년이면 복음주의 개신교도와 가톨릭 신자의 수가 같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브라질 아마존의 무성했던 숲이 훼손된 모습. 마치 이발기계가 마구잡이로 머리를 밀고 지나간 것처럼 휑하다. 2020년 8월14일 촬영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보수 정당은 사회의 보수화 분위기를 등에 업고 지난 6월 상하 양원 모두에서 벌목 추적을 위한 핵심 기구인 토지 등기소의 기능과 물 관리에서 환경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룰라 정부의 아마존 보호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또 현행 헌법이 제정된 1988년 당시 원주민이 거주하지 않고 있던 땅은 원주민 구역으로 지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의결했다. 룰라 정부는 1988년에 거주하지 않았더라도 조상 대대로 살아오다 1960~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강제로 쫓겨났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원주민 구역을 인정해주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었다. 원주민 구역으로 지정되면 외부인의 벌목·채굴 등 모든 개발 행위가 금지돼 원주민과 아마존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다. 의회는 이런 보호망을 거둬버린 것이다.

■ 기업농과 석유업자, 개발의 욕망

강력한 로비 집단인 기업농 세력도 룰라 대통령의 아마존 보호 정책에 부정적이다. 브라질에서 농업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0년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하던 농업 분야는 2021년 7%로 덩치가 커졌다. 농업 부문의 대자본인 기업농 세력은 이처럼 커진 힘을 배경으로 브라질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기업농을 대표하는 한 로비스트는 “농업 비즈니스 없는 브라질은 생각할 수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브라질 농업이 본격 성장한 것은 룰라 대통령이 첫 임기 시절 중국과 교역 확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마존 개발을 강력히 지지하는 기업농 집단은 지난 대선 기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단단한 지지세력이었다. 반대편에 선 룰라 대통령과는 불화를 겪었다. 지난 4월에는 브라질 최대 농산물 박람회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참석할 뜻을 밝히자 룰라 정부의 현직 농업장관의 초청이 취소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룰라 대통령은 박람회 주최 쪽을 “파시스트”라고 비난했고, 주최 쪽은 룰라 대통령이 환경 문제를 이념화하고 있다고 맞섰다.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아마존 유역 유전개발 계획은 룰라 대통령의 또 다른 시험대다. 현재 정부 재정의 5%를 감당하고 있는 페트로브라스는 아마존강이 흘러나가는 대서양 어귀에서 시추를 추진하고 있다. 페트로브라스는 추정 매장량이 300억배럴인 이곳을 개발하면, 현재 하루 300만배럴인 산유량이 2030년까지 500만배럴로 늘어 브라질이 세계 4위의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브라질 원주민들이 지난 5월30일 원주민 구역 지정을 제한하려는 의회의 입법 추진에 맞서 상파울루 외곽 고속도로를 막고 타이어 등을 태우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브라질 환경청은 지난 5월 시추 허가를 요구하는 페트로브라스에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며 서류를 반려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승인 거부가 부당하다”고 반발하며 재심을 요구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환경청이 시추 허가를 끝내 거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석유 개발 압력이 높은데다, 룰라 정부 내부에서도 경제부처와 환경부처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룰라 대통령마저 지난주 “최종 결정된 건 없고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 보호와 개발의 균형, 외줄타기

아마존 보호의 또 다른 걸림돌로는 이 지역에 만연해 있는 가난이 꼽힌다. 아마존 유역이 있는 브라질 북부와 동북부는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절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개발 요구가 어느 곳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아마존 지역은 그냥 단순한 생태보호구역이 아니라 인구 5천만명이 살아가는 곳”이라며 그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한 아마존 보호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들이 숲을 훼손하지 않고 이용하는 경제 모델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존 보호에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아마존 내륙 지방을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등 여러 지역 개발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아마존 열대우림을 관통하는 이들 철길과 도로를 내다 보면, 삼림 훼손이 불가피하다. 또 불법 채굴업자와 벌목업자들을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2021년엔 아마존 관통 철도가 개통되면 2035년까지 제주도 면적보다 훨씬 넓은 2300㎢의 숲이 훼손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

룰라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원주민부는 “원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추진해선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이지만, 교통부는 이를 대표적인 우선순위 사업으로 꼽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개발과 보호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충돌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브라질 국립아마존연구소의 한 연구자는 “그건 개발이란 용어로 말하고 싶은 게 뭐냐에 달렸다”며 “개발이 숲을 콩 같은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기 위한 땅으로 바꾸는 걸 뜻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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