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총리한테 질문 있는데요?" 윤석열 정부엔 없는 직접 소통, 독일은 누렸다

신은별 2023. 8. 2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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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일 독일 연방정부 '오픈하우스'
20일 독일 베를린 연방정부 총리실 앞에 정부가 매년 개최하는 오픈하우스 행사에 참석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20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베를린 총리실 앞에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늘어섰다. 연방정부의 연례행사인 '오픈하우스'를 기다리는 인파였다. 오픈하우스는 정부가 각 부처 시설을 개방해 정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국민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는 행사다. 올해는 19, 20일에 열렸다.

총리와 장관들이 각본 없이 국민들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하는 행사가 하이라이트다. 올해는 특히 날 선 질문들이 예상됐다. 독일 언론 빌트암존탁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3분의 2가 정권교체를 원하는 등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올라프 숄츠 총리를 비롯한 내각 인사들이 총출동해 까다로운 질문을 기꺼이 받았다. 면전에서 비판도 들었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국민의 알 권리를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독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인들도 그 중요성을 알기에 오픈하우스가 1999년 이후 매년 열리는데도 매번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연방 공보실은 올해 행사 참여 인원이 약 10만4,000명이라고 20일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0일 독일 베를린 연방정부 총리실에서 국민들과 즉문즉답 시간을 갖고 있다. 연방정부 제공

사전 등록, 시나리오 없는... 독일 총리와의 '자유로운' 만남

독일 국적자가 아닌 기자가 행사에 참여하는 데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안전·보안을 위해 소지품 검사를 받았을 뿐 사전 등록은 필요 없었고 신분 증명을 요구받지도 않았다. 다만 많은 인파 탓에 대기 시간은 감수해야 했다. 숄츠 총리와의 즉문즉답이 진행된 20일에는 특히 많은 사람이 몰려 약 45분을 기다린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숄츠 총리는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가량 국민들과 만났다. 질문을 원하는 국민들이 손을 들면 사회자가 무작위로 질문자를 뽑는 방식이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장기전에서 독일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아동 복지 예산을 줄이는 게 맞나"와 같은 고난도 질문이 쏟아졌다.

20일 독일 베를린 연방정부 총리실에서 열린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가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시민들에게 미소를 보이고 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따끔한 비판도 많았다. 한 남성은 숄츠 총리에게 "도대체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경제가 위태롭고 연립정부에서 불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질책이었다. 내각이 성평등을 구현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내각 구성원 17명 중 여성은 7명(41%)이다.


"소통 통해 민주주의 배워"... '일방 소통'만 있는 한국과 대조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은 한국 정부와 대비된다. 기자회견은 언론을 통해 국민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방식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연 이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도 지난해 11월 중단됐다. 국무회의 등을 통해 메시지를 내기는 하지만 일방적으로 발화하는 형식이다.

독일 정부 오픈하우스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정부가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이 정부의 신뢰도 향상에 기여한다고 입을 모았다. 마누엘(34)은 숄츠 총리의 즉문즉답에 대해 "1시간은 너무 짧았고 답변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국민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정부가 듣는 자리를 매년 마련한다는 점에서 정부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부부 안드리·아나스타시아(41)는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고 왔는데 뜻밖에 정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19일 독일 베를린 연방정부 언론 및 정보국 건물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대학생 클레멘스 레오니다스(20)는 19일 "오픈하우스 행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독일인들은 이러한 소통이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참여했다는 대학생 클레멘스 레오니다스(20)는 19일 "정부를 향해 어떤 질문을 할지 등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꾸준히 가꿔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약자 배려 '눈길'... 빼곡한 정책 홍보, 결국 정부에도 '득'

사회적 약자가 참석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는 조치들도 눈에 들어왔다. 숄츠 총리의 즉문즉답을 비롯해 대화가 동반되는 행사에는 수어통역사가 배치됐다. 정부는 홈페이지에서 "행사장 대부분은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고 밝혔다. 어린이는 우선 입장이 가능했다. 어린이, 청소년만을 위한 즉문즉답 시간도 따로 마련됐다.

20일 독일 베를린 연방정부 총리실에서 열린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동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정부의 소통 노력은 결국 정부에도 이득인 듯했다. 행사는 약 350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는데, 상당수는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숄츠 총리도 "2021년 말 정권 출범 후 법정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조치를 도입했다"며 즉문즉답 시간을 정부 홍보 및 국민 설득의 자리로 적극 활용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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