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죽고나자 ‘학살 없었다’는 주장 나오기 시작”
아라카와 학살 증언 모아온 日 ‘봉선화’ 니시자키 대표
“봉선화 운동을 시작한 1980년대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일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쿄 곳곳에 목격자가 살아 있었으니까요.” 지난달 28일 도쿄 스미다구(區)에서 만난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일본 이름 ‘호센카’)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64) 대표는 “어느새 증언자들이 모두 죽고 없어지자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같은 이들 말이다”라고 했다. 고이케 지사는 2017년 이후 7년째,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시민 단체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1982년에 만들어진 봉선화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아라카와(荒川) 제방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목격담을 40여 년간 모아왔다. 니시자키 대표는 대학생 때 조선인 학살을 처음 알고 봉선화 운동을 시작한 고(故) 기누타 유키에(絹田幸惠·1930~2008년)씨와 함께 증언 수집에 평생을 보냈다. 2020년엔 봉선화가 수집한 학살 관련 증언에 다른 단체가 찾은 증언 기록을 모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록, 1100건의 증언’을 출판했다.
니시자키 대표는 “학살이 60년이나 지난 1980년대 와서야 증언이 조금씩 나왔다”며 “지역에선 금기시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가해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옆집 할아버지는 살인자’라는 이야기일 수 있기에 누구도 선뜻 증언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자 증언자들이 ‘죽기 전엔 이야기해야겠다’며 조금씩 말을 꺼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죄 없는 조선인을 일방적으로 집단이 때려죽인 이야기”라며 “일본의 학교, 지역 사회, 가정 그 누구도 안 가르쳤으니 다음 세대는 모르게 되었다”고 했다.
니시자키 대표는 100명 정도의 증언자가 나왔지만 다들 목격자이고 가해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2009년에 추모비를 세웠을 때 60대 남성이 와서 ‘할아버지가 치매 걸려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고 증언한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절대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면서 “(관동)대지진 때 동료들과 함께 조선인 대여섯 명을 뒤에서 쫓아가 때려서 죽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관동대지진을 피해서 (도쿄에서) 피난 온 조선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본인이 학살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 한두 명씩 조선인을 고용한 기름 공장이나 자전거 가게 등은 대부분 직원을 숨겨주었습니다. 평소 알고 있던 조선인이었으니까요.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믿지 않고 보호해준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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