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재벌 3세의 새로운 도전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2023. 8.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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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2017년은 격동의 해였다. 정치적으로 건국 이후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대통령과 측근이 광범위하게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뜻밖에도 이 사건은 재벌개혁이라는 경제적 이슈로 총구가 향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또 다른 축에 특정 재벌의 경영세습을 돕기 위해 정치권력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때문이었다.

정치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이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단체로 국회 청문회에 나왔다. 총수들은 청문회에서 과거의 경영관행을 고치겠다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정농단 사건의 청문회 이후 상당수 총수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평생을 기업경영에 몸 바쳐온 총수들이 자의 반 타의 반 퇴임했으니 속마음은 쓰렸을 것이다.

어쨌든 국정농단 사건은 우리나라 재계에 재벌 3세 시대를 앞당긴 계기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시차를 두고 총수에 올랐다. 올해 공정위가 발표한 30대 재벌그룹을 보면 10년 전과 비교해 총수의 절반이 바뀌었고, 전체의 30%는 창업 3세 총수가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재벌 중에서도 향후 5년 이내에 3세로 교체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부분이다.

선대가 물러난 자리를 이어받은 재벌 3세 총수들은 과거와 다른 경영방식을 보여줄 것을 다짐했다. 어떤 재벌은 자식에게 기업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기업자금 지출은 엄격한 내부 이사회의 심사를 거쳐 집행할 것이라는 투명경영을 약속했다. 기업이익을 극대화해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영혁신은 물론 신사업을 강화해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상당수 재벌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떤 재벌은 과거와 다른 방식의 경영을 모색하는 데 애쓰고 있다. 젊은 총수가 등장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을 보면 의사결정 과정이나 경영방식에서 변화의 모습이 감지되기도 한다. 사회적인 소통을 통해 소비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는 진정성도 보인다.

반면 여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인 재벌도 존재한다. 제왕적 존재로 군림하면서 편법으로 기업이익을 편취하고, 일감 몰아주기로 기업이익을 빼돌리고, 방탕한 사생활로 손가락질을 받는 총수도 있다. 여기에 재벌을 국정농단 사건의 수렁에 빠트리는 데 한 몫을 했던 경제단체는 슬그머니 부활을 모색 중이다. 또다시 재벌들 사이에 무슨 불상사가 터질지 벌써 걱정된다. 해묵은 과거를 청산하기엔 5년의 시간이 너무 짧은 시간인지 모르겠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것이 기업인의 숙명이다. 친분이 있는 총수는 “기업의 성공 여부는 이익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이익의 결과로 평가받는 존재”라며 이윤추구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쩌면 기업과 기업인에게 정직성과 도덕성을 평가의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지나친 낭만적 판단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기업의 속성인데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벌도 시대정신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공생이다. 정글에 초식동물만 살면 곧 사막이 될 것이고, 사자와 호랑이만 있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정경유착이나 제왕적 경영방식, 은밀한 뒷거래를 통한 편법적인 부의 축적과 같은 경영 악습은 경제구조를 편향되게 만든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독과점시장을 배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구조의 현실에서 재벌은 단순한 기업의 개념을 넘어서는 사회적 중추로 존재한다. 소수의 재벌이 흔들리거나 위기에 빠져도 국민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당시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아낌없이 들고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재벌의 변화는 정치권력의 이동이나 경영 세대의 교체와 무관하다. 재벌의 경영방식도 시대정신에 발맞춰 새롭게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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