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전염병이 바꿀 미래
흑사병(Black death)과 페스트를 같은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0년까지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대유행을 특정해서 의미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페스트는 어떤 질병인지 알아보자.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일으키는 감염병인 페스트는 인플루엔자, SARS, 코로나19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평소에는 설치류에서 유행하는데, 설치류도 희생자일 뿐이고 실제 자신에게 해가 없는 상태로 세균을 지니고 퍼뜨리는 숙주는 열대 쥐벼룩이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열대 쥐벼룩의 위장에서 오래 생존이 가능해 열대 쥐벼룩이 피를 빨기 위해 설치류를 무는 과정을 통해 전염된다. 하지만 열대 쥐벼룩이 꼭 설치류의 피만 빨지 않고 다른 포유류의 피를 빨기도 하기 때문에 인간이 물리면 페스트가 발병하는 것이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를 지닌 열대 쥐벼룩은 초원 같은 야생에서 서식하는 설치류에 주로 기생하므로 인간에게 유행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았고, 오랫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서 소규모로만 발생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며 제국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교류가 늘어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벗어나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제노바와 베네치아처럼 무역으로 번성했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부터 시작되어 유럽을 휩쓸었다. 1300년 이전에도 다양한 전염병이 유행했지만 이처럼 참혹한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했고 공포는 당시 기록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1348년 도시에서 큰 역병이 발생했다. 역병은 너무 심각해서 환자가 발생하면 돌보던 사람까지 역병으로 사망했으며 나흘이 지나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의사조차 처음 보는 역병이라 치료법을 몰랐고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를 몰살하는 경우가 흔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닭 소 말 양 같은 동물도 죽었다. 환자의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혹이 생기고 갑자기 열이 났으며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공포가 모두를 짓눌러서 질병이 퍼지자 집을 버리고 달아났고 의사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으로 죽어 치료할 의사를 찾기 어려웠다. 도시는 죽은자를 매장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렌체 연대기)
3, 4년 남짓한 ‘흑사병의 시대’ 이후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강력한 봉건사회가 흔들렸다. 인구가 줄어 노동력이 없어지면서 영주가 몰락하고 농민의 지위가 상승했다. 엄청난 재앙을 겪은 대중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고, 가톨릭 교회의 힘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사상이 싹터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극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질병이나 기후변화가 세상을 바꾼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정글 깊은 곳의 박쥐에 기생하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개발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온난화로 동토에 얼어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오며 언제 또 다른 코로나19가 유행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원격근무 재택근무가 많이 시행되고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며 지금은 완화되었지만 언제 또 검역이 강화될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질병과 기후변화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먼 훗날에는 AI가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을 지배할지도 모르겠고, 사람이 다른 행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지도 모르고, SF영화에서처럼 엄청난 능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할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사회체계가 만들어 질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몇백 년 전 봉건 왕조시대에 지금의 사회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단지 내가 살아갈 정도의 가까운 미래에는 누군가 나보다 똑똑하다고, 나보다 세금을 많이 낸다고, 나보다 학력이 좋다고, 나보다 어리거나 혹은 나이가 많다고, 나보다 하는 일이 많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잘생겼다고 해서 더 많은 권리와 표를 주는 세상은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 그런 사회를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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