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민원 생긴 교사를 ‘죄인’ 간주한 것 반성”
“내 자식 지상주의 벗어나 공동체적 학교로 만들어야
교육부 교권보호 고시에 맞춰 학생인권조례 개정 나설것”
“학교 현장에서 민원이 발생하면 그간 학교나 교육청이나 교사를 ‘죄인’처럼 간주했다. 반성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되도록 민원이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교사들을) 압박한 측면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에서 초1 담임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 이후 첫 신문 인터뷰다. 이 사건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교권이 붕괴됐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조 교육감은 “앞으로는 민원 내용이 부당한지를 균형 있게 판단해 교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래는 일문 일답.
―교육부가 교권 보호를 위한 고시안을 17일 공개했다. 어떻게 봤나.
“(고시 내용 중) 대부분은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이미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고시의 큰 방향과 보조를 맞추는 방향으로 조례를 검토해 봐야 될 것 같다. 조금이라도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면, 고시의 큰 방향과 보조를 맞춰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 용모나 복장 이런 부분 교육부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확정을 할지 봐야 할 것 같다. ”
―고시안의 휴대전화 압수, 학생의 용모 복장 규정 등은 서울의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되는데….
“조례를 보완해야 할 부분이나 (고시와 조례의) 충돌 지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고시의 큰 방향에 조례를 맞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교실 내 휴대전화 소지 규제도 교육적 접근의 제재라면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다. 용모 복장 규정도 조례에서는 하나의 획일적 기준을 정하고, 그걸 벗어나면 일률적으로 제재하는 걸 금지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집단적 합의 과정을 통해 하는 식으로는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두발 형태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있으면 안 된다’ 그런 내용도 조례에는 없다.
―어떤 생각의 전환이 있었나
“과거에는 권위주의 방식으로 자유 권한을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꼭 자유권 확장의 관점으로만 휴대전화를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를 수업 중에 사용하는 것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문제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 자신의 성장이나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가치의 측면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누군가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교권 침해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향유하는 것에 대한 균형 잡힌 생각이 필요한 때다. 학교나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행위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엄정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내 새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서울, 광주 등 전국 7개 시도에서 시행 중이다. 교사 사망사건 이후 일각에서는 “조례가 학생인권만 너무 보호한 나머지 교권 추락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일었다.
―고시안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은….
“교권 침해 학생을 다른 학생들과 분리하거나, 물리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또 다른 민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유치원 고시의 경우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한 제재와 원생의 교육권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치원 교원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안)’에는 유치원 원장이 교권 침해를 한 학부모의 자녀를 출석정지, 퇴학 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교원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부모의 잘못으로 자녀의 학습권이 침해받는 것이라 위헌·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교권 보호 대책은 어떤가.
“중대 교권침해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은 또 다른 법률 분쟁을 불러올 수 있어 신중했으면 좋겠다. 일단 법제화 되는 순간 후퇴(완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임태희 경기교육감님이 화해 조정 과정을 의무화하되, 안 되면 생기부에 기재를 하고 한 번 기록하면 영구적으로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안을 내셨다. 교육부가 만일 학생부 기재를 강행하더라도 5년, 10년 단위로 기록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를 지역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는 방안은.
“완전히 이관하는 것보다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교권보호위원회 운영을 병행하는 방식이 교권 보호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경미한 사안은 학교 차원에서 화해·종결하도록 열어두자는 것이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교권 침해에 대한 조치를 학생부에 기재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여야는 이를 논의 중이다.
―교사 사망사건 이후 시교육청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다.
“서이초 비극에 대해서는 정말 여전히 아픈 마음을 갖고 있다. 사건 직후 ‘국회의원이 관여됐다’ 등 잘못된 정보들이 온라인에서 퍼졌다. 사건이 벌어진 해당 학교는 최소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저희가 동의했다. 교육청은 학교 측이 초기에 작성한 입장문 내용이 경찰 수사로 명확히 확인된 게 아니기 때문에 문구를 삭제하자는 입장이었다.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입장은 전혀 아니었다.
―교육부-교육청의 합동 조사에서도 속 시원히 밝혀진 것들이 없다.
“조사 결과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수사권이 없어 학부모 조사도 하지 못했고, 충분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동료 교사들에게 학부모 상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나, 고인의 심리적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알 수 있는 증언은 충분히 확보해 발표했고 경찰에도 공유한 상태다.”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왕의 DNA’ 운운하며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갑질한 사건이 논란이 됐고, 교육부의 대처도 비판을 받았다. 시교육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학교를 감독하고 교사를 지원해야 하는 교육청 직원들이 교사에게 갑질을 한다면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대 블랙홀’ 등 사교육 과열이 심각하다. 대안은….
“독일의 교육 풍토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선행 학습이 교사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고 다른 학생의 사고, 질문,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사교육을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처럼 학원에 매달리진 않는다. 독일 대학들도 서열에 차이가 거의 없다. 반면 한국은 공교육(초교) 교사들조차 미취학 아이들이 학원에서 알파벳, 기본적인 사칙연산 등을 선행 학습하고 입학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도 심각하다. 이를 바꿔야 한다.”
―‘영어 유치원’ 바람은.
“최근 사교육의 광풍에는 영어 사교육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영어 사교육 열풍과는 좀 다른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때는 그래도 박근혜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해 공적 규제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경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학부모들이 영어에 대한 실물적 수요를 동물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영어를 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영역이 훨씬 넓어진다. 시교육청이 영어 공교육 테스크포스팀을 만든 것도 영어 공교육을 강화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원어민 교사를 추가 배치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영어 학습 콘텐츠를 폭넓게 사용하는 등 방식으로 공교육을 강화해 나가겠다.”
―교육부의 자사고 존치 방침에 따라 앞으로 평가가 부활하는 것인지.
“교육부에서 5년 단위 평가의 큰 방향성을 확정해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학교의 유형별 차이를 통해 교육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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