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93] 숙대입구역 무표정한 사람들
서울 지하철 숙대입구역이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이들의 다리가 무거워 보인다. 한결같이 무표정이거나 아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이 거칠게 처리한 이목구비 때문이기도 하고, 다리가 바닥에 엉겨 붙은 듯 검붉은 물감으로 얼버무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 격자 무늬의 빨간색 공간이 있다. 화가 서용선(1951~)의 도시 풍경에서는 이처럼 왜곡된 형상과 비현실적 색채가 강렬하게 충돌한다.
서용선은 대도시의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을 유심히 살핀다. 그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곳곳이 촘촘히 연결된 도시야말로 현대적인 삶의 특징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고 믿는다. 1951년 전쟁 통에 태어난 화가의 눈앞에서 잿더미였던 세상은 순식간에 북적이는 대도시로 변모했고, 그동안 그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하루의 삶을 위해 정해진 노선을 따라 이동하는 군중 속에서 떠밀리듯 살아왔다. 따라서 서용선이 정류장이나 역을 주로 그리는 것은 분주한 인파 가운데 그나마 잠시 멈춰 풍광을 관찰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최적 지점이 바로 정류장이나 역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역과 정류장에서 탈 차를 기다리거나, 달리는 지하철 혹은 버스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거나, 그다음 행선지를 향해 역에서 빠져나와 모두 한 방향으로 걷는다. 아무리 넓은 대도시라고 할지라도 대중교통이 한 개인에게 제공하는 공간은 대단히 좁다. 그러니 물리적으로는 서로 바짝 붙어 있을 수밖에 없으나, 이들 사이에서 시선이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서용선의 그림 앞에서 혼란과 우울, 연민과 권태를 동시에 느끼는 건 무표정한 저들 속에서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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