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 칼럼] 폭력적 위기에 대한 몇 가지 언급
어쩌다 ‘안전한 치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사회가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지 마음이 착잡하다. 범행의 ‘동기’와 ‘표적’이 상식에 비춰서는 납득할 수 없고, 테러와 살인 예고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지난 한 달 동안에만 다른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예측하기 힘든 사건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해, 국민들의 가슴을 크게 쓸어내게 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도 결코 간단치 않음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계속된 흉기 난동 사고와 같은 이상동기 범행 경우, 심리상태가 정상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고 가해의 실상도 단순 ‘원한’에 사무친 대인관계 범행에 그치지 않고, 무차별적이고 험악해졌다는 사실은 마치 추리소설 속 연쇄살인을 보는 듯 현실감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 같은 범행이 비록 국가기능이 체계적으로 발동되더라도 놓치기 쉬울 정도로 급박하고, 언제든지 평화로운 일상 속 주변에서 재발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다.
굳이 대처를 위해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본다. 우선은 약해진 위하력이다. 안전사회를 위한 국가의 책무와 공권력의 행사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축소되고, 위축됐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범죄의 심각성과 흉악성에 대한 형벌체계의 위하력을 약화시키고, 치안활동을 위축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시민의 인권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앞서는 것은 극단적인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정의가 아니다.
다음은 대응 문제다. 예측하기 힘든 테러와 무차별 범죄 등 폭력적 위기 극복을 위한 적절한 타이밍은 군사작전처럼, 선제적이고 치밀해야 함은 기본이다. 이는 마치 언제 새는 지붕을 고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패러독스와 같은 이치다.
만약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지붕을 고치고 싶어 하지만, 막상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붕 고치기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면, 국민의 안전은 결코 담보될 수 없다. 위험사회 속에서는 사태의 본질을 사전 예견하고,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위기대응의 보편적 원리다.
마지막은 관심 치환과 정치 과잉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발생된 사건을 살피는 협치와 다짐 대신, 사고의 책임을 다른 대상으로 돌리고 정파의 손익계산에만 매달리고 있다. 법과 정치 등 우리 사회의 장치들이 더 이상 힘없는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것은 ‘불안의 역치’다. 이는 극단적 범죄가 발생해도 시민들이 느끼는 자극과 반응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묻지마 흉기 난동’과 ‘살인예고’가 속출해도 불안감이 무뎌지는 심리적 현상이다.
사실 범죄는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범죄에 대한 이해는 현실에 부합한 논의에 근거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치 남의 일처럼, 관념적으로만 접근되고 있는 것은 범죄의 대책을 어렵게 한다. 이것은 모두가 자각해야 할 또 다른 문제다.
‘미래는 아무런 지도도 없는 하나의 대륙이다’는 테일러의 경구가 떠오른다. 미처 예측 못한 위기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다. 최근 끔찍한 사건들이 보여준 모습은 일상 속에서 상처나고, 억눌린 증오의 감성이 어떤 이유로 타인을 향해, 충동적 파괴행위로 표출되는지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 부적응자의 소외와 차별이 극단적 범죄의 토양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강력 범죄가 단순히 산업화와 형식적 민주화의 후과(後果)로 나타나는 빈곤과 차별에 연유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에게 뚜렷이 인식시켜줬다.
하지만 위기는 종종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될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들을 일상 속의 불가피한 현상으로 간과하지 말고, 더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고, 공권력의 엄격함을 견지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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