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신지애와 프로 정신
철저한 직업 의식과 자기 관리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내가 선수라는 걸 먼저 생각”
며칠 전 프로 골퍼 신지애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가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내 주변에도 그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미 LPGA 투어에 진출해 정상에 올랐다가 일본으로 옮겨 10년째 뛰는 그는 4년 만에 미국 투어 메이저 대회에 나가 US여자오픈 2위, AIG여자오픈 3위를 했다. 경기에 몰입하면서도 모든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두 대회에 나선 한국 후배들 누구도 신지애를 넘지 못했다. 35세 나이에 수준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밀을 알아보려 했으나 그는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훈련한 것뿐”이라고만 답했다. 미국 골프 매체들은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가 미국 투어 카드를 반납하고 사라진 그가 갑자기 나타난 듯 신기해했지만, 사실 그는 일본 투어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꾸준히 활약해왔다. 1988년생 ‘세리 키즈’ 다수가 은퇴했거나 은퇴 수순을 밟는 상황에서 신지애는 “각자 역량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제가 그게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답변 곳곳에서 프로 정신이 빛났다. 그는 선수 생활 내내 허리, 손바닥, 팔꿈치 등 여러 차례 부상을 겪었고 수술대에도 올랐다. “힘들어서 쉬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아플 때까지 하는 성격이어서 아프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경험이 쌓여 이제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고 철저히 관리한다. “내 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조정하는 것이 선수로서 몸 관리의 기본”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식마다 몸에 나타나는 반응을 기록해온 일지는 이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됐다. 몸에 안 맞는 음식은 철저히 멀리하는데 “참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컨디션으로 골프를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뿐”이라고 했다. 자기 몸에 대해서는 최고 전문가가 됐다. 그래서 숫자나 기계보다 감각을 바탕으로 골프를 할 수 있고, 데이터와 기계는 의존하는 대신 활용할 수 있다. “제 몸에 대해서는 제가 다 판단합니다. 선수이기 때문에 제가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는 이번 주부터 일본 투어로 돌아가 2000년대생들과 경쟁한다. 한·미·일 상금왕과 영구 시드 등 역사적 기록이 눈앞에 있다. “대기록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다 보니 결과 얘기가 너무 부각되고 있어요. 솔직히 좀 벗어나서 과정에 집중하고 싶어요”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과정이란 경기할 때 마음가짐과 집중도”라고 한다. “수술도 받고 부상 치료도 받으면서 그때마다 복귀하는 저를 보고 다른 선수들이 용기를 많이 얻는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의 하루하루가 후배들에겐 길이 되고 힘이 된다. “먼저 온 선배로서 그냥 내가 열심히 하고 있으면, 나 같은 선배가 있다는 것만 알려주면 후배들은 힘을 받지 않을까.” 그 자신도 새로운 세대를 지켜보며 “감명받고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자극을 얻는다. 이토록 생생한 현역에게 은퇴 후 계획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지금은 제 일에 집중하기도 바쁜 것 같아요. 은퇴가 아니라 제가 하고 있는 이 운동에 계속 집중하고, 은퇴 후는 은퇴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직업 의식, 프로 의식이 부족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래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할 의지조차 없어 숱한 혼란과 갈등을 빚는다. 신지애는 “기본적으로 내가 운동 선수, 골프 선수인 것을 인지하면서 모든 행동을 하려 할 뿐”이라고 했다. 직업인의 품격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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