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우리 대학원, 이제 자신감을 가질 때다
지난 칼럼에서 우리 대학원이 위기라고 했다. 낮은 투자와 정책적 무관심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몇 주의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올해 교수공채에 지원한 신진 연구자들을 면접하면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면접은 대학의 교수채용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다. 대학마다 차이가 있지만 필자의 대학은 학과평가를 통과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총장, 대학원장, 학장 등이 참여하는 최종 면접을 한다. 후보자별로 자기소개서, 연구성과, 추천서, 외부 평가자료까지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심층질문을 해서 인재를 뽑는다. 지난 몇 주 동안 학문세계의 주역이 될 젊은 연구자를 많이 만났고 밝은 미래를 봤다.
첫째, 우리 대학원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최종 면접에 오른 지원자 중에는 국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많았다. 상당수는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을 비롯한 최정상급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학문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피인용 횟수도 많았다. 국내에서 학위를 하고 연구를 수행했지만 많은 경우 세계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었다. 외국 대학 박사가 우수할 것이라는 편견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인재가 많았다. 왜일까. 우선 논문을 지도하고 함께 연구를 수행한 우리 교수들의 역량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20년 넘게 진행된 'BK21'(Brain Korea 21) 같은 정부지원도 한몫했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 대학들이 보유한 최고의 연구장비와 기자재도 높은 연구성과를 내는 데 이바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부 분야는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양에서 질로 바뀌는 평가 패러다임에 한국 대학들이 빠르게 대응한 것도 나름 역할을 했다고 본다.
둘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하버드 의대병원, 듀크대 심리학연구실 같은 해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세계적 연구그룹에 들어가 최첨단 연구에 참여하고 글로벌 연구 생태계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포닥 기반 연구활동이 이공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학문의 균형발전을 위해 인문·사회계열 연구자의 해외연구 기회를 지원하는 투자가 필요하다. 학계도 한 스승 밑에서 도제식으로 배우는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생각해볼 때다.
셋째, 젊은 연구자들에게 볼 수 있었던 다른 특성은 자신감이다. MZ세대답게 날카로운 질문에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 연구에 대해 자신 있게 답했다. 정상을 향해 힘차게 언덕을 올라가는 젊은 연구자들에게서 학문적 패기와 도전정신을 느꼈다. 'K팝' 'K컬처'가 세계를 무대로 누비고 있다. 세계 최고를 꿈꾸면서 자신만의 '연구 유니버스'를 만들어가는 신진 연구자들을 보면서 머지않아 'K리서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마지막으로 여러 분야에서 깊게 파고드는 '연구덕후'를 보는 즐거움도 이었다. 우주와 별에 흠뻑 빠진 천체 물리학자부터 식물을 가슴으로 사랑하는 생명과학자, 뇌의 신비로움을 데이터로 밝히려는 심리학자, 수학문제 풀이를 즐기는 수학자까지 모두 연구에 '진심'이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한껏 들떠 설명하던 젊은 연구자들의 진지한 눈빛과 흥분에 젖은 목소리를 잊기 어렵다. 학자로서 승부욕과 끈질김도 배어 있었다. 그 순간만은 질문자도 응답자도 면접이란 걸 잊고 한편의 연구 서사(書史)에 빠져들었다. 후배 연구자들은 신나게 말했고 선배 교수들은 그 열정에 경의를 표했다.
위에서 말한 사례들은 아직 보편적 스토리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학문 후속세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기엔 충분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학문 수입국'에서 벗어나 글로벌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날이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자신감을 가질 때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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