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살인예고’, 누가 왜 하는가

정지혜 2023. 8. 21. 23:2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은데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익명으로 올라오는 살인 예고 글이 논란을 낳기 시작할 때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시국에 온라인에서 살인 예고 글이 유행처럼 번진다는 건 매우 징후적이다.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이며 온라인 공간의 어떤 특성이 이들을 살인 예고 글까지 거리낌 없이 쓰도록 만들었는지, 이게 어떻게 하나의 놀이처럼 가볍게 자행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은데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익명으로 올라오는 살인 예고 글이 논란을 낳기 시작할 때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몇몇 기자들이 “일주일이면 유행 끝나고 잠잠해지지 않겠냐”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업데이트되는 살인 예고 글 관련 수사 통계를 볼 때마다 어디까지 숫자가 올라갈지 참담했다. 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이날 오전 9시까지 살인 예고 글 431건을 발견해 작성자 19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20명을 구속했다.
정지혜 사회부 기자
도심에서 발생한 잇따른 흉기 난동 사건으로 경찰이 사상 첫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할 만큼 전 국민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태다. 이런 시국에 온라인에서 살인 예고 글이 유행처럼 번진다는 건 매우 징후적이다.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이며 온라인 공간의 어떤 특성이 이들을 살인 예고 글까지 거리낌 없이 쓰도록 만들었는지, 이게 어떻게 하나의 놀이처럼 가볍게 자행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붙잡힌 작성자들은 대부분 “장난이었다”, “관심 받고 싶었다” 등의 이유를 댔다. 타인의 두려움에 공감하는 능력이 조금도 없거나 아니면 이를 잘 알면서도 ‘사람들을 겁주는 게 재밌어서’ 문제의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형편없이 낮아진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실명이나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무슨 말이든 끄적여도 제지당하지 않는 온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분위기도 이를 부추겼다. 이곳에서는 가장 일탈적이고 자극적인 글을 쓸수록 인기를 얻고 주목을 받는다. 커뮤니티나 플랫폼 측의 필터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이런 분위기가 쉽게 바뀌진 않을 상황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들은 그렇다면 누구일까. 성별로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의 게시물은 주로 남초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왔으며 에브리타임이나 블라인드 같은 익명 커뮤니티에도 등장하고 있다.

검거된 피의자 중 10대는 90명으로 전체의 41.7%를 차지했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이 적지 않다. 지난 1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서 칼부림하겠다는 글을 SNS에 올려 경찰관 39명이 출동해 일대를 수색하게 만든 것도 11세 초등학생이었다. 이 초등학생은 이튿날 경찰에 검거돼 지난 17일 서울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심지어 경찰청 블라인드에도 살인 예고 글이 올라와 빈축을 샀다. 블라인드는 직장 인증을 통해 쓰는 폐쇄적 커뮤니티인 만큼 작성자가 경찰일 가능성이 높다. 곧장 삭제되긴 했지만 온라인에 캡처본으로 빠르게 퍼진 문제의 글은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는 제목으로 “다들 몸사려라ㅋㅋ 다 죽여버릴꺼임”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불필요한 집단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연령대나 성별 상세 통계를 제공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일단락되면 범죄자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현황 파악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일탈 범죄에 대응하는 첫 단추다.

정지혜 사회부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