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판사가 넘지 말아야 할 선
이례적 징역형, 법리도 상식 어긋나
사법의 정치화’, 법치·민주주의 위협
차기 대법원장, 사법부 바로 세워야
미국 연방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관의 표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93년 상원의 인사청문회에서 공정한 재판의 3가지 필수 원칙으로 ‘암시하지 않고, 예측하지 않고, 예고하지 않는다(No hint, No forecast, No preview)’를 내세웠다. 재판에 영향을 줄 외부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청문회 당시 낙태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았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이념 성향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신념에서다.
박 판사의 ‘남다른’ 행적은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케 한다. 그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울분을 터뜨리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썼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자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판사 임용 전에 쓴 글은 더 노골적이다. 이러니 ‘정치 성향에 따른 감정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진보 성향인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판사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점이다. 오현석 부장판사는 2017년 8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직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는 글을 올려 법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김미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2020년 6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에서 “이 사건은 검찰개혁을 시도한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반격이라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고 발언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두 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들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많이 다루는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에 배치하는 등 대거 중용했다. “법원 내 주류가 교체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자 피고인과 변호사들은 재판부가 어떤 모임 소속인지 수소문하느라 분주했다.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이 “지금 사법부는 중병에 걸렸다”고 했겠나.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규정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법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에 대해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규정을 무시했다. 대법원은 파문이 커지자 뒤늦게 진상 조사에 나섰다. 대법원이 박 판사를 징계하지 않는다면 다른 판사들에게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차기 대법원장 후보가 지명된다. 차기 대법원장은 김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 폐해를 반면교사로 삼아 사법부를 바로 세워야 한다. 판사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판결에 투영하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 재판부 기피신청이 늘어나면 재판 지연이 더 심해질 것이다. 극심한 진영 정치로 나라가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럴수록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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