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은 어떻게 ‘자유인’이 됐나
이강인 대표팀 차출 조율 않고
“유럽 A매치 뒤” 본인 입장만
역할 소홀, 결국 협회에 책임
“대한축구협회와 계약하기 전에 이미 진행하기로 약속했던 일들이다. 이번달 말에는 모나코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예선 조 추첨이 있다. 내가 UEFA 자문위원 중 한 명이어서 관련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남자 축구 대표팀을 지휘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한국을 떠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으며 유럽파 점검을 마친 뒤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날 기자회견도 자택에서 진행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전 한국 상주 약속을 어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한국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분명히 내가 이렇게 업무를 보는 것이 한국에서는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 세계 축구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는 자리에 있고, 여러 곳에서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이 협회가 계약으로 보장한 권리라며 다른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정작 한국에 있어야 할 시기에 한국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지난달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본부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 추첨을 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 전까지 조 편성 결과, 앞으로 대응 전략에 대한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 편성 결과가 나온 직후 바로 각오를 밝혔던 황선홍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과 대비된다.
이강인(22·파리 생제르맹)이 성인 대표팀은 물론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동시에 차출돼 각 대표팀 합류 시점 등을 놓고 사령탑 간에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이 오는 9월 유럽 원정으로 치르는 웨일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치른 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이 두 대표팀 모두에 좋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바람만 드러냈다.
앞선 네 차례 A매치에서 승리가 없는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9월 유럽 원정 친선경기 승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한지도 의문이다. 클린스만호는 앞선 경기들을 통해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등 일부 포지션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현재 대표팀의 핵심 자원인 유럽파들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쪽에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포지션들이 있다. 국내파 옥석 가리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이미 기량이 검증된 유럽파 선수들을 점검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클린스만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책임은 결국 축구협회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지금 클린스만 감독이 하는 일들은 어디에든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을 때 할 일들”이라며 “계약할 때 금액을 무제한으로 맞춰줄 수 없으니 다소 자유롭게 개인 활동을 보장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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