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향해 로킥…“근육질도 여성의 몸”

유선희 기자 2023. 8. 2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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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선수로 땀 흘리는 김영지·허주경
허주경 선수가 자신의 싸움 무기인 ‘미들킥’을 선보이고 있다. 유선희 기자
프로무대 6년차 김 “무조건 마른 것만이 몸 가꾸는 게 아냐”
데뷔 앞둔 허 “영향력 있는 선수돼 여성격투기 알리고 싶어”

“싸우고 싶었다”는 여자들이 있다. 주먹을 휘두르고 킥을 날리며 상대팀과 힘과 기술을 겨루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이다. 싸우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김영지(31), 허주경(19) 선수를 지난달 3일 강원 원주시 단구동 제이킥짐(이하 체육관)에서 만났다.

김 선수는 어느덧 프로 데뷔 6년차가 됐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이 체육관에서 사범으로서 지도자 역할도 함께하는 중이다. 그가 사범으로 있을 때 만난 허 선수는 다음달 초 일본에서 프로 데뷔를 앞둔 새내기다.

“격투기를 배우고 2주 만에 아마추어 시합에 나가게 됐거든요. 그냥 막 싸웠어요. 끝나고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계속 싸우고 싶었어요.” 김 선수가 말했다. 김 선수는 운동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아마추어 시합에 나갈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2017년 프로 데뷔전에서는 일본의 요시코를 꺾었다. 요시코는 교묘한 반칙으로 악명이 높아 김 선수의 승리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김 선수의 무기는 ‘로킥’이다. 다리를 이용해 상대방의 하체를 공격하는 기술이다. 그는 “(상대방 다리) 안쪽 로킥에 대한 타격이 좋다. 안다리 로킥으로 승점도 많이 냈다”고 했다. 요시코와의 시합에서도 로킥이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로 데뷔를 앞둔 허 선수는 왼발 미들킥이 싸움의 주무기다. 상대방의 오른쪽 옆구리를 정강이로 가격하는 기술로 정확도와 순발력이 뛰어나다.

격투기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자신들만의 무기를 갈고닦고 있지만, 현실은 여성 선수들에게 녹록지 않다. 당장 같은 체급의 싸울 상대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경기에 뛰고 싶어도 상대할 선수와 체급이 다른 경우가 많아 경기 일정을 잡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허 선수는 “체중을 감량해서라도 경기에 나서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선수가 없다고 해 불발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다음달 일본에서 프로 데뷔를 하는 이유도 국내에서 겨룰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에 한 번 나서는 일도 힘든데, 더 큰 고통은 주변의 ‘편견’과 싸우는 일이다.

“격투기를 한다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이 따라 오더라고요. ‘(여자가) 뭐 제대로 하냐? 해봤자 제대로 못할 거다’ ‘여자애가 왜 그런 걸 하냐’ 이런 말들. 다들 한마디씩 충고를 하려 들더라고요.”

허 선수는 또래보다 일찍 진로를 정했는데도 선생님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럼 저는 반박하듯 ‘도움주실 거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하냐, 잘되고 찾아뵙겠다’고 했다”며 “속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이를 갈았다”고 말했다. 가족들도 반대했던 터라 속앓이를 하며 “많이 울었다”고도 했다.

이런 편견은 김 선수도 비슷하게 겪었다. 그는 “‘여자’를 운운하면서 적당히 취미로만 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남자였어도 같은 말을 했을까, 싶었다”고 했다. 여섯 살 터울인 오빠의 반대가 심해 프로 데뷔 전까지는 운동하는 걸 숨길 정도였다.

그나마 최근 여성들의 강인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피지컬100>, <사이렌>과 같은 예능프로그램이 “위안이 된다”고 했다. 김 선수는 “근육질도 여성의 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마른 것만이 몸을 가꾸는 게 아니다. 근육질도 똑같다”며 “‘커지는 몸, 근육질의 몸’, 이것도 제 몸”이라며 웃었다.

동료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다. 새내기 허 선수는 “선배들 덕분에 점점 편견도 깨지는 것 같다”면서 “아시아 격투기 단체 ‘원챔피언십(ONE Championship)’ 경기에 나서는 것이 꿈이다. 여자 경기도 정말 재미있는데 한두 경기만 보고 지루하다고 단정짓고 안 보는 분들이 많다. 영향력 있는 선수가 돼 여성 격투기를 많이 알리고 싶다”고 했다.

김 선수의 전적은 아직 승보다 패가 많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기는 싸움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뛰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싸울 때가 “즐거워”서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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