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들고 대학로 배회한 남성…시민 1015명이 ‘선처 탄원’ 왜?
중증 지적장애인 박모씨
정신연령 3~7세에 불과
형제복지원 피해 트라우마
“가해보다 방어 위한 행동
구속 아닌 치료 도와줘야”
중증 지적장애인인 박모씨는 지난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입주 전엔 고아원, 미인가 종교시설, 부랑인 시설을 떠돌았다. 박씨를 가둔 시설 중엔 부산 형제복지원도 있었다. 시설 탈출 뒤엔 회현역 한쪽 바닥을 집으로 삼았다. 지능지수 35~49, 정신연령 3~7세인 그에게 국가는 평생 ‘가두는 사람들’이었다.
박씨에게 ‘할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2002년이다. 홈리스행동의 전신인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노실사)이 만든 사랑방에 입주하면서 활동명이 주어졌다.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아무도 그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와 초로의 주름에 모두 그를 ‘할배’라 불렀다. 할배는 사랑방에서 홈리스들을 도왔다. 함께 한글을 배우고 같은 홈리스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홈리스행동 활동가들도 그를 인권운동가라 불렀다.
할배는 지난 17일 대학로에서 흉기를 들고 5분간 거리를 돌아다니다 체포됐다. 장애 특성상 소리에 민감한 그는 오토바이의 굉음에 놀라 집에 있던 흉기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처음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휴대) 혐의가 적용됐다가 특수협박죄로 죄명이 변경됐다.
지난 19일 할배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를 아는 이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흉기를 들고 다녀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 특성과 생애과정을 고려하면 구속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1983년 무호적 상태에서 호적을 취득해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나이보다 열 살가량은 나이가 많고, 여러 지병이 있어 물리적으로 범행할 수 없다는 주장도 담겼다.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모인 탄원서는 총 1015건에 달한다.
할배와 함께 활동했던 A씨는 탄원서에서 “(할배가) 몇번이고 하던 말이 ‘나 옛날에 형제복지원에서 무척 많이 맞았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가해보다는 자기방어 수단이었던 거 같다. 구속보다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주실 것을 탄원드린다”고 적었다.
홈리스행동 집행위원 B씨도 “저를 비롯한 홈리스야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가 누구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과거 어려웠던 생활과 국가폭력의 트라우마, 취약해진 건강으로 인해 종종 울분을 느꼈고, 큰소리로 마음속 응어리를 푸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소리를 내곤 했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적었다.
특수협박죄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흉기를 휴대하고 사람을 협박한 경우 특수협박죄가 적용되지만 일시적인 감정 표현에 불과한 경우, 협박에 고의가 없는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김봉규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도망의 염려와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을 고려했다”며 할배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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