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혐의 특정 안 돼” 사단장 결국 뺐다…해병대 수사 결과 엎어 ‘외압’ 논란 확산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 사건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1사단장과 여단장의 범죄 혐의는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사단장과 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수사보고서를 회수해 재검토한 국방부가 사단장 구하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보직해임하고 항명 혐의로 수사 중인 국방부와 대통령실 등의 ‘외압’ 논란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날 ‘해병대 순직사고 재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해병대 수사단이 특정한 8명의 혐의자 중에서 대대장 2명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특정되고 현장에 있던 중위와 상사 2명은 혐의가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나머지 사단장과 여단장, 중대장과 중사 등 총 4명에 대해서는 혐의 사실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사본부는 민간 경찰에 대대장 2명의 혐의 사실을 적시한 인지통보서, 사단장 등 4명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적시한 서류 등을 이첩할 예정이다. 혐의가 없다고 본 중위, 상사와 관련한 문서는 따로 작성하지 않는다.
조사본부는 대대장 2명의 혐의를 특정한 이유에 대해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여단장의 지침을 위반해 허리까지 입수를 직접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대장 이하 한정” 그대로…‘현장 지휘 부담’ 판단 뒤집어
“사단장 임무 정보 전달 지연
병사 순직에 직접 영향 없어”
수사단 초동 조사 미흡 강조
여단장은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할 것을 지시했는데 대대장이 마치 상급자의 승인을 받은 것처럼 임의로 허리 깊이 입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다른 대대장은 이를 그대로 수용해 자신의 대대에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는 해병대 수사단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앞서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31일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브리핑 자료에서 “사단장의 작전지도간 복장, 경례 태도, 브리핑 상태 등에 대한 지적사항으로 예하 지휘관(대대장)이 지휘 부담을 느껴 무리하게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조사본부는 사단장과 여단장, 중대장, 중사 등 4명에 대해서는 “일부 진술이 상반되는 정황도 있는 등 현재의 기록만으로는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됐다”고 밝혔다. 이 역시 해병대 수사단 결론과는 크게 다른 부분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브리핑 자료에는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임무에 대한 정보를 여단장에게 너무 늦게 알려 현장 지휘관들이 구명조끼 같은 안전 장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사본부는 장병들을 허리 높이까지 입수시킨 대대장들의 과실은 명백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라고 판단했지만 안전 장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게 한 사단장의 과실은 채 상병 순직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조사본부는 중위와 상사를 혐의자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이들은 당시 조편성 기준에 의하면 사망자(채 상병)와 같은 조로 편성되지 아니했음에도 자신들이 임의로 사망자의 수색조에 합류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현장에 있었던 간부라면 당연히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사본부는 “실황조사 기록이 불충분했고 안전시스템 작동 여부를 확인한 기록이 없었고 당시 현장에서 실제 작전통제권한을 보유했던 육군 50사단의 지휘관계 등에 대한 기록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또 “변사사건 중 경찰에 이첩한 다른 사건의 이첩 소요 기간은 최소 1개월에서 최대 4개월이었던 것에 비해 해병대 수사단은 14일 만에 사건 조사를 종료했다”고 했다.
조사본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재검토 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미리 보고했고 유가족에게도 설명했다고 밝혔다. 재검토 결과를 언론에 공지하기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보직해임된 박정훈 대령은 수사단의 결과보고서를 지난달 30일 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고 승인도 받았는데 같은 날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보낸 후 국방부 태도가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부터 국방부에서 ‘대대장 이하로 혐의자를 한정하라’는 ‘외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국방부는 채 상병 순직과 직접적이고 충분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혐의자까지 이첩 자료에 포함되면 경찰 수사에 부당한 영향을 준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조사본부의 결론을 보면 실제로 대대장보다 높은 사단장과 여단장의 혐의 사실은 지우기로 한 것이어서 ‘사단장 구하기’ 외압 의혹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본부는 “향후 경찰 등의 수사를 통해 이번 사고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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