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골칫덩이 팁 문화, 한국 상륙?
얼마 전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직원 12명과 회식한 기업인은 계산서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한국식으로 고기 먹고 소주와 맥주를 마셨는데, 1인당 우리 돈으로 약 22만원씩 청구됐다. 여기에 20%를 팁으로 내니 팁 값으로만 54만원이 나갔다. 기자가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5년 전엔 음식 값의 10~15% 정도를 팁으로 놓고 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간혹 18%를 팁으로 주면 홀 서빙 종업원에겐 최고의 날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18% 팁을 준 손님에게 웨이트리스가 따져 물었다. “내 서비스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미국에서 팁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맥도널드·서브웨이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찾곤 했다. 하지만 이제 무인 셀프 계산대에서도 팁을 강요받는다. 계산대에 서 있으면 점원이 마지막 단계에서 모니터 혹은 태블릿을 손님 쪽으로 돌린다. ‘15%, 20%, 25%, 스스로 결정’ 그리고 ‘노 팁(No tip)’ 중 고르도록 돼있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점원, 뒷줄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노 팁’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 기간 고생하는 종업원, 배달 종사자에 대한 배려로 오른 미국의 ‘팁 인플레’가 고착됐다. 여기에 배달 앱과 태블릿 결제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팁 결제 과정을 심어 놓으면서 팁은 더 이상 호의가 아닌 가격의 일부가 됐다. 팁 거품이 심해지면서 같은 식당 내에서도 팁을 받는 홀과 못 받는 주방 종사자 간에 수입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팁은 영국 튜더왕조 시절 귀족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것이 런던의 커피하우스로 번졌고, 한 커피숍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위해서(To Insure Promptitude)’라고 적힌 박스에 동전을 넣은 데서 머리글자를 따와 팁(tip)이란 말이 탄생했다고 한다. 남북전쟁 후 미국인들이 영국을 여행한 뒤 돌아와 뽐내면서 이를 퍼뜨렸다. 엘리너 루스벨트 미 대통령 부인은 이를 못마땅히 여겨 “무분별하게 팁을 주는 것은 미국인의 저속한 습관”이라고 했다.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가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는 시범 서비스를 도입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부정적인 반응이 월등히 높다.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사실상 가격이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골프장에도 전 세계에 없을 무분별한 팁이 번지고 있다. ‘호의에 바탕을 둔 작은 성의’라는 기본을 벗어나고 있다. 골칫덩이가 된 미국의 팁 문화를 우리가 수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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