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옥, 도덕이 무너진 사회

기자 2023. 8.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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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남좌파론’이 유행할 때 그에 대한 반박 논리로 ‘도덕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진보적이라고 해서 강남에 살면 안 되냐, 그것은 개인에 대한 과도한 도덕적 요구라는 것이었다. 이런 도덕주의 비판론은 진보도 개인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고, 진보라고 해서 그런 욕망을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며, 보수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금욕’을 진보에게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이 도덕주의 비판론은 고삐 풀린 욕망과 도덕에 대한 냉소를 배양하는 효과를 낳았다. 조국 사태는 교수로서의 지위와 자원을 활용해 사적 욕망을 추구했던 조국 일가의 면모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를 지적하면 과도한 도덕주의라는 반론을 받고는 했는데, 그런 논리는 이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공적으로 부여된 권위와 권한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효과를 낳았다. 도덕이라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지 않아도 된다면 엘리트는 더 무거운 책임 대신 더 달콤한 특권을 누리는 자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일베’로부터 출현한 도덕에 대한 냉소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정서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들은 민주진영이 보수진영을 비판하는 건 ‘내로남불’이라고 말했다. 민주진영 스스로가 도덕주의라고 비판했던 그 도덕적 상식을 근거로 보수진영을 비판하는 건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집단은 한국 사회가 그간 만들고 지켜온 도덕적 규범들을 허물어뜨리는 데 함께 일조했다.

지금 들려오는 참담한 소식들은 양당 정치가 앞장서 도덕을 해체해 온 것의 결과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으로 불안정했던 프랑스 제3공화정 시기에 한 사회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기초’를 탐구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그 사회가 상식으로 공유하는 도덕적 규범을 필요로 한다. 사회 구성원들 다수가 그 도덕적 규범을 지킬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기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상식으로 여겨졌던 도덕적 규범들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될 때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인 사회에서 시민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도덕은 무력할 따름이다. 교사를 믿지 못하는 학부모는 자식을 볼모로 잡힌 것처럼 느끼며 교사를 통제해 자식이 어떤 불이익도 겪지 않도록 악다구니를 쓴다. 이런 사태를 해결해야 할 엘리트들은 공적인 책임을 지는 대신 그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는 엘리트들의 무책임이 어떻게 시스템을 마비시키는지 보여준다. 나아가 끊이지 않는 ‘흉기난동’ 사건과 살인예고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규범인 살인의 금지까지도 의문에 부치고 있다.

막말에 가까운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도덕 붕괴의 정점을 찍었다. ‘민주주의, 인권, 진보’라는 단어에는 식민지와 독재라는 이름의 야만과 폭력의 역사에 대항해 시민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몸부림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취해 온 ‘도덕’, 그 자체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인권, 진보’를 “공산전체주의”라 운운한 것은 이 도덕의 부정이다. 도덕이라는 단어가 고리타분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도덕은 낯설고 생소한 단어가 돼버렸다. 그런 사회에선 SPC 노동자가 또 사망해도 노동운동이 문제고, 여성이 거리에서 또 죽어도 여성가족부는 폐지돼야 한다.

도덕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핵심 의제이지만 도덕을 포기한 것이 오늘날 정치의 핵심 문제다. 그 결과 시민들은 억울한 죽음들을 애도하고자 포스트잇을 붙이는 대신 스프레이와 삼단봉을 구매하고 있다. 사회적 애도를 통해 비극적 사건이 앞으로 일어나선 안 된다며 도덕적 기준을 재확인하는 대신, 이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도 믿을 수 없으므로 자력구제만이 유일한 방책이 되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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