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하와이 산불, 식민주의와 물의 문제

기자 2023. 8.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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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수재로 난리를 겪는 동안 세계 곳곳이 불타고 있다. 미국 하와이에 이어 캐나다와 스페인에서도 대규모 산불 소식이 들린다. 그 가운데서도 하와이에서 발생한 산불은 하와이가 미국 본토에 복속되기 이전까지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마우이섬 북서쪽의 해안 도시 라하이나에서 일어났기에 피해가 더 컸다. 지금까지 사망자 114명, 실종자는 최대 1300여명에 달해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최대 인명피해를 낸 산불로 기록되게 되었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잦은 산불이 기후변화의 결과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하와이 산불의 경우에는 하와이라는 지역과 라하이나라는 도시가 갖는 상징성 때문인지 식민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논의가 눈에 띈다. 화재를 빌미로 토지를 매입하려는 외지 부동산업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조시 그린 주지사는 산불 발생 지역에서 토지거래를 일시 정지하도록 지시했다.

산불 참사 직후부터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은 지역에서 오래 연구하고 활동해 온 하와이 원주민 활동가들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식민주의의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자칫 너무 빠른 진단은 식민주의 역사가 남긴 현실의 복잡성에 눈감게 할 우려가 있다. 하와이에서 식민주의 역사와 산불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물을 둘러싼 싸움’이다. 페루나 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주민들의 광산 반대 운동에서나,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송유관 반대 운동에서나 물은 언제나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하와이 말로 물은 ‘와이(wai)’라고 한다. 이를 두 번 반복한 ‘와이와이(waiwai)’라는 말이 풍요, 즉 ‘물이 있으면 삶이 있다’를 의미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하와이 사람들에게 물은 신성한 자원이었고, 지금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물이 크게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 라하이나 지역은 19세기 초까지도 습지였고, 원래 지명인 ‘말루울루 오렐레(Malu’ulu o Lele)’는 울루(ulu) 즉, ‘빵나무’로 뒤덮인 땅을 의미했다. 백인들은 그 빵나무를 베어버린 자리에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을 만들었다. 습지에서 뽑아 올린 담수는 이들 작물을 재배하는 데도 필요했지만, 사탕수수를 정제 설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또 그 설탕을 당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물과 땔감이 소요됐다. 그렇게 하와이는 점차 건조하고 황량한 땅으로 변했고, 물 부족이 심화됐다.

하와이인들이 이런 현실을 순순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결행하면서 저항했고 늘어난 비용이 부담스러워진 기업가들은 점차 사탕수수 농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문제는 당시 관개수로와 저수지를 규제 없이 사용하면서 물을 독점하던 플랜테이션 농장이 사라졌다고 해서, 물에 대한 권리가 주민들에게 돌아온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떠나는 농장주들은 수로와 저수지의 권리를 민간 기업과 개발업자들에게 넘겼다. 원주민들이 전통 농업에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1970년대 이후에야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조금씩 확대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물에 대한 원주민들의 권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식민주의가 기후위기를 가져왔다는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진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원주민들의 권리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소방용수 확보라는 명분이 원주민들이 어렵게 확보한 물의 권리를 제약할 수 있는 명분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 전역에 빼곡하게 들어찬 호화주택이나 리조트들은 화재라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방용수로 저수할 수 있도록 원주민들의 권리를 제한해달라는 청원을 내고 있다. 원주민들은 화재 이후 라하이나 재건 과정에서 새로운 주택들이 건설된다면 물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건설과 방재를 명분으로 원주민들의 권리는 더욱 제약될 것이라 걱정한다.

더욱 뜨거워지고 건조해지는 지구에서 물을 둘러싼 싸움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은 생명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도 제한된 물을 불 끄는 데 써야 할지, 농사짓는 데 써야 할지, 마실 물을 사람부터 가축까지 어떻게 배분할지를 둘러싸고 어려운 씨름을 해야 할 판이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일수록 중요한 건 지금 누가 물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공개하고 그 쓰임의 우선순위를 토의하는 일이다. 이는 가뭄에 모내기가 어려워도 골프장에는 농업용수를 헐값에 보낸다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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