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생태계 망치는 팔현습지 개발

김기범 기자 2023. 8.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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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등이 실시하고 있는 취학연령 아동 전수조사는 드러나 있지 않던 아동학대 사례들을 찾아내 어린이들을 학대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추가적인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신들이 겪는 학대를 부모 외 성인들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생태계 훼손으로 인한 고통을 인간사회에 전달하기 어려운 동식물들이 겪게 될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아동 전수조사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특히 개발 대상지의 동식물 현황을 파악하고, 멸종위기 동식물과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을 찾아내는 생태조사는 지나치게 악영향이 큰 개발사업으로 인해 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그런데 최근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 개발사업에서 마치 아동 전수조사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어린이를 발견하고도 조사자들이 눈감아버리거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탓에 어린이를 구해내지 못하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팔현습지 개발 현장에서 최근 1년 사이 확인된 어류인 얼룩새코미꾸리와 흰목물떼새,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포유류인 담비와 수달과 삵, 파충류인 남생이 등 멸종위기 동물과 천연기념물인 원앙, 황조롱이 등의 이야기다. 모두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해 9월부터 현장에서 확인한 멸종위기 또는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 목록이다.

그런데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들어 있는 법정보호종은 수달, 원앙, 삵 3종뿐이었다. 다른 6종의 법정보호종이 현장에 가자마자 서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동물들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실한 조사가 이뤄졌다면 누락될 만한 종도 아니라는 점에서 사업자 대신 생태조사를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의 조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팔현습지는 대구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인위적 영향을 덜 받아온 덕분에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산책로 등 조성사업으로 인해 훼손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들은 실제 현장에 나가지 않고 기존 조사 결과가 담긴 문헌 내용을 베끼거나, 조사자 1~2인이 하루 현장에 다녀온 뒤 여러 분류군의 동식물 조사 결과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어류,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식물 등을 각각 1명 이상이 맡아 사계절에 걸쳐 진행해도 충분하지 않은 생태조사를 날림으로 실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인데 팔현습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팔현습지 개발사업은 이 토건사업의 주체인 낙동강청과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협의하는 대구지방환경청이 모두 환경부 산하기관이란 점에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대한민국 자연환경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환경부 산하기관들이 짬짜미라도 한 듯 허술한 환경영향평가를 눈감아주고, 숱한 반대에도 사업을 강행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산하기관들이 학대당하는 자연을 못 본 척한 채 사업을 강행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환경부 본청이라도 나서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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