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보이저호
8월20일은 보이저 2호가 발사된 날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77년 보이저 2호를 1호보다 먼저 발사했다. 1호는 나중에 출발하지만 빠른 경로로 목성까지 먼저 도착하고, 2호는 먼저 출발하되 탐사에 적합한 경로로 나아갈 예정이었다. 그해는 마침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일렬로 늘어선 덕분에 적은 탐사선으로 여러 행성을 탐사하기에 좋은 때였다. 행성의 중력으로 추진력을 얻기에도 좋았다. 결국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방문하도록 다시 프로그래밍되었고, 최초로 태양계 외곽 행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보이저호의 다른 임무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두 탐사선에는 ‘골든 레코드’로 유명한 LP판 ‘지구의 소리’가 실려 있다.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와 예술가팀은 인류의 메시지를 보이저호에 싣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이들은 지구에서 나는 소리, 인류의 인사말과 음악, 그리고 인류에 대해 알려줄 사진 등을 선별하느라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물론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보이저호가 실제로 외계인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메시지의 1차 수신자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골든 레코드를 준비하는 과정이 담긴 <지구의 속삭임>에 따르면, “많은 자문 위원들은 외계 문명이 메시지를 받을 확률은 기껏해야 미미한 데 비해 지구의 거주자들이 메시지를 접할 확률은 100퍼센트라는 점을 강조했다.”(25쪽)
그러니 골든 레코드 작업은 곧 인간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지구 바깥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타자에 대해 인류는 어떻게 여기는지, 그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류의 일원으로서 검토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메시지를 말할 때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논쟁에서 어떤 발화는 상대방을 설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구의 소리’가 누군가에게 닿을 즈음엔 진짜 지구의 소리는 사라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소리가 녹음된 때보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위기가 더욱 현실화되었다. 그래도 보이저호는 우리가 “이미 멸종했거나 못 알아볼 만큼 변했을 게 분명한 머나먼 미래에 미지의 발견자에게 닿고 싶어 할 만큼 크나큰 무언가”(226쪽)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과거 우리가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되새기도록 해준다. 우주 탐사와 관련된 제국주의적 시선과 여러 차별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읽고 만다.
현재 두 탐사선은 항해를 이어가는 중이다. 1호는 이제 태양으로부터 약 240억㎞, 2호는 약 200억㎞ 떨어진 위치에 있다. 빛의 속도로도 2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보이저호는 내장된 플루토늄이 노후하며 에너지 출력이 매우 저하된 상태다. 이미 난방장치를 끄는 중이고 통신장치 등도 머지않아 정지하리라 예상된다. 생명체로 치면 보이저호는 영원한 잠에 들고 있다. 그래도 관성에 의해 계속 나아가 300년 후에는 오르트구름에, 30만년 후에는 시리우스에, 어쩌면 언젠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게 닿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아무도 만나지 못하더라도 보이저호에 실린 메시지는 우리에게 남아 있다.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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