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 지방의 실패는 누가 책임지나

기자 2023. 8.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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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끝났다. 이제 그 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들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텐데,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실패가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파행을 거듭했던 전라남도의 포뮬러1(F1) 경기, 1000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린 경상남도의 마산로봇랜드, 수천억원을 들였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경상북도의 3대 문화권(유교·가야·신라)사업,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던 강원도의 레고랜드 등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왜 지방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사업을 벌이지 못해 안달일까? 임기 내 대표사업을 만들려는 정치인들의 욕심, 끊임없이 기획서를 들이미는 기업들의 이해관계, 무사안일하지만 승진은 하고 싶은 관료들, 뭐라도 해야 돈이 돈다며 여론을 주도하는 지역토호들, 별 이득 없이 들러리만 서는 지역주민들, 이들이 뒤섞여서 계속 실패작들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비수도권의 경우는 강도가 조금 더 세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재정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전국의 평균 통합 재정자립도는 50.1%,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도 평균은 61.2%, 도·특별자치도 평균은 39.2%, 시 평균은 32.3%, 군 평균은 16.6%이다. 즉, 수도권과 지방의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지방정부의 재정능력은 줄어든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교부세와 보조금 등으로 지방정부의 재정을 지원한다. 정부의 총지출에서 지방으로 이전되는 재원의 비중은 매년 늘어나 2023년의 경우 37.2%로 237조9000억원에 달한다. 2017년의 경우 133조9000억원이었으니 6년 동안 104조원이 늘어난 셈이고, 이런 재원을 보태면 지방정부의 재정능력(재정자주도)은 군 평균이 65%로 훌쩍 뛰어오른다. 특별히 가난한 곳은 없고, 있는 예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지방정부가 태반이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무모하게 국제행사나 대형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를 예산 부족에서 찾는 건 잘못된 진단이다.

그러면 지역주민들이 원해서일까? 지방정부는 툭하면 지역주민들의 숙원, 염원이란 말을 쓰지만 정작 미리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형사업일수록 주민들에게는 정보가 없고, 사업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첫 삽을 뜨고 나서야 듣는 경우가 많다. 대형사업들은 주민들의 삶과 연관이 없다.

실패가 반복되는 주된 원인은 끈끈한 이권동맹과 체계화된 무책임 때문이다. 대형사업을 해야 지역 소식이 중앙언론에도 나오고, 중앙/지방 정치인과 관료, 기업, 토호들이 나눠 가질 이권도 생긴다. 막대한 예산, 비자금, 승진, 광고, 사회적 영향력 등 이권의 형태는 다양하다.

더구나 사업이 실패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이상한 구조이다. 정치인들은 임기가 끝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면 되고, 기업들은 시설이 완공되거나 사업기간이 끝나면 돈 챙겨서 떠나면 되고, 관료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우기면 된다. 동네에서 행세하는 눈치 빠른 사람들은 보조금만 챙긴 뒤 재빨리 다른 사업으로 갈아탄다. 실패는 이미 기획단계에서부터 예견되고, 실패하면 또 다른 사업으로 돌려막으면 된다.

책임은 이권과는 거리가 먼 주민들에게 떠넘겨진다. 골프장과 같은 난개발을 막는 일조차도 주민들이 직접 멸종위기종을 찾아 보존의 근거를 만들어야 할 만큼 행정은 무책임해졌다. 예전 같으면 행정과 싸워도 보겠지만 이제는 주민들의 수도 부족하고 고령화되었다. 더 문제는 지킬 마음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려올 자식’들은 없고, 내가 ‘마지막’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 죽기 전에 팔리면 좋고, 도시의 자식들에게도 부모가 남긴 농촌의 집은 팔아야 할 자산일 뿐 지켜야 할 고향이 아니다.

개발과 이권의 다툼은 어디서나 벌어지지만 책임의 상실은 지방에서 두드러진다. 실패는 누구라도 할 수 있기에 그 과정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이권의 흐름도, 책임의 소재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실패가 누적될수록 이권은 늘어나고 책임은 사라진다.

중앙정부가 지방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 끈끈한 이권동맹을 해체하는 일은 혁명을 일으키는 일만큼이나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역을 지키자고 외치기엔 자신이 없다. 이 난관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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