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영의 이제 좀] 국무총리와 화장실 청소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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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만금 세계잼버리스카우트 현장을 찾아 화장실 청소를 했다.
8월8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75세 총리가 화장실 청소까지 하며 잼버리 대회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총리를 추켜세웠다.
잼버리 행사에 애초에 청소노동자가 평범한 정도로 배치되었다면 아무도 잼버리에서 화장실을 연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덕수 총리는 "사병 때 다들 화장실 청소해보셨을 것 아니냐. 누구에게 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직접 청소도 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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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황두영 작가]
8월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만금 세계잼버리스카우트 현장을 찾아 화장실 청소를 했다. 잼버리를 중앙정부가 직접 챙기기로 하면서, 부실의 상징이 된 화장실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은 총리가 정장 셔츠를 입은 채로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휴지로 변기의 오물을 닦아 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주로 문제가 된 '푸세식' 변기도 아니었고 참가자들의 불만대로 오물이나 휴지가 쌓여 있는 화장실도 아니었다. 이 정도 연출로 총리의 솔선수범 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아무래도 총리님 댁에는 청소요정이 따로 계신가보다.
8월8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75세 총리가 화장실 청소까지 하며 잼버리 대회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총리를 추켜세웠다. <월간조선>도 9월호에서 고령의 총리가 변기를 닦은 후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며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월간조선) 변기 닦고 도시락 반찬 일일이 챙겨 '잼버리 사태 수습']
총리의 화장실 청소에 대한 찬사를 들으며, 나는 총리와 비슷한 또래이고 대부분 여성노동자인 청소노동자들을 생각했다. 왜 그들은 매일 천번 만번 위대한 행위를 하면서도 최저임금이 될까 말까한 임금만 받고, 이 더위에 휴게시설, 샤워시설도 제대로 없이 일하고 있을까. 심지어 한여름에는 야외 화장실 질식사고 산재의 위험도 상존한다.
잼버리 난리에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화장실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준비 부실은 본의 아니게 필수노동이 사라진 현장이 얼마나 금방 아수라장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수년에 걸쳐 아주 많은 예산이 들어간 행사마저도 일순간에 무너진다. 잼버리 행사에 애초에 청소노동자가 평범한 정도로 배치되었다면 아무도 잼버리에서 화장실을 연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수노동은 부재하는 순간에야 모든 문제의 상징이 된다.
'저절로 청소되지 않는 화장실' 때문에 우리는 화장실을 치울 격에 맞는 자가 누군인지를 다시 결정하게 된다. 한덕수 총리는 “사병 때 다들 화장실 청소해보셨을 것 아니냐. 누구에게 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직접 청소도 해라”고 얘기했다.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모두 나서라는 지시였지만, 이 발언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필수노동이 지위고하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걸 드러낸다. 화장실 청소는 가장 낮은 지위인 '사병'일 때나 하는 것이다. 국무총리가 가장 낮은 자의 일을 하기 때문에 '파격'이 되는 것이다.
다수의 언론에서 부실한 준비를 수습하기 위한 무리한 공무원 동원을 지적하는 맥락에서 '공무원들에게 화장실 청소까지 시켰다'고 보도했다. 물론 공무원 당사자들의 발언을 취재해 인용하는 보도였지만, '화장실 청소'를 공무원에게 절대 시켜선 안 될 극한 작업으로 표현해도 될 지는 고민이 남는다. 공무원들의 인격이 침해될 수준이라 절대 시켜선 안 될 일을 생업으로 매일 하는 자들이 이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청소노동자들을 무심코 천대하게 되진 않는지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아쉬웠다.
아무도 치우려하지 않는 저 오물은 학벌, 자격증, 전문 경력 따위만으로 노동의 값을 정할 수 없다는 걸 가르쳐준다. 많은 노동들처럼 화장실의 오물을 닦아낼 때, 우리의 인격은 조금씩 깎여 팔려나간다. 다만 우리는 인격의 값을 헐하게 치고, 인격 외에는 자원이 없는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왔을 뿐이다. 2024년도 최저임금은 실질적으로 하락했고, 정부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를 수입해 가사와 돌봄 노동을 싸게 떠맡기겠다고 한다. '화장실 청소'의 격은 무엇인지, 그 격의 값은 얼마인지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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