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에너지 급진주의’

이정애 2023. 8. 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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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2021년 12월29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본부를 방문해 신한울원전 3·4호기 부지를 둘러본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 뒤로 보이는 발전소 돔은 한울 1·2호기다. 울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뉴스룸에서]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의 사회 제도나 정치 체제 관행 따위를 급격하게 변혁하려는 주의.’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은 ‘급진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단연코 급진주의자다.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는 과격한 말로 반대파를 싸잡아 때리며, 전임 정부가 5년간 추진한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대한민국을 ‘개혁’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탄소중립 목표’(2018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 2050년 탄소 순배출량 0) 달성 방식까지도 급격히 ‘유턴’시켰다. 기후변화와 급증하는 산업전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원전밖에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밀어내고 ‘탈-탈원전’(탈원전 정책 폐기) 정책을 선포했다.

탈-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백지화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됐다. 고리 2호기 등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까지 계속 운전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신규 원전 건설 검토 단계까지 나갔다. 국가 전력정책을 결정하는 ‘전력정책심의회’는 최근 민간위원 중 11명을 교체하며 그 밑자락을 깔았다. ‘친원전’ 인사는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쪽 인사는 대부분 뺐다.

다른 한편에선 태양광 발전 비리 의혹에 대한 대대적 감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혈세가 이권 카르텔의 비리에 사용됐다”고 단정했다. 정부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가 만든 전기를 사주는 제도를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시장 진출 문턱을 높이는 작업에 나섰다. 원전의 화려한 복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는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모양새다. 현재 기술로는 ‘유이’한 무탄소 전력원끼리 어쩌다가 한쪽이 살면 한쪽이 죽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꼴이 됐을까.

최근에 만난 에너지 분야 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이란 구호를 앞세웠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고 말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높아진 원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수용한 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으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분간은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탈원전이란 과격한 구호는 ‘원전 퇴출-신재생에너지 육성’이라는 불필요한 대립각마저 만들었다고 했다. 짓기로 했던 원전 건설마저 중단되는 사태를 맞자, 밥그릇을 잃게 된 원전업계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훗날을 별렀다. 오늘의 급격한 역주행은 그 결과라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은 윤석열 정부의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무탄소 전력원으로서 원전의 역할을 간과했다면, 반대로 윤석열 정부는 원전의 위험성을 대책 없이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78년 첫 원전 가동 이후 원전 부지 내에 쌓아온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양은 무려 1만8600톤이다. 당장 2030년이면 차고 넘칠 판이다. 최근 원전이 몰려 있는 강원도 동해안 주변 해역에서 지진이 빈발하며 ‘제2의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과연 우리 동네에 신규 원전을 유치하겠다고 찬성하는 곳이 있기는 할까. 공연히 되지도 않을 일에 사회적 갈등만 부추긴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우리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도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점이다. 전력 수요를 맞출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이유로 원전만 늘려가는 방식으론 결코 답이 안 나온다. 우리 정부가 원전에 중점을 둔 탈탄소화(CF100)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해도,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사용 전력을 전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RE100)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안전 문제와 탄소중립 달성,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정부가 갖고 있는 탄소중립 로드맵이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세워진 게 맞는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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