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세상에 알린 연구자”

한겨레 2023. 8. 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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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가신이의 발자취] 한국 장애학을 사랑한 일본 장애학자 다테이와 신야 교수를 기리며
2018년 대만 국제장애학 포럼교류회에서 다테이와 신야(왼쪽) 교수와 대화하는 필자. 필자 제공

지난 7월9일 일본 교토대병원에 입원 중인 다테이와 신야 리쓰메이칸대 교수님을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뵐 수 있었습니다. 치료 중이어서 너무 마른 몸에 민 머리,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했고 31일 비보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8월13, 14일 일본을 다시 방문해 고인 영정에 인사를 드리고 오는 귀국길에 ‘이제 그만 눈물을 멈춰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1980년 도쿄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사회학을 공부하던 중 장애학생 지원을 경험했고, 일본 장애인자립생활센터운동이 한참이던 1980년대 중반 자립생활 연구에 참여한 결과물로 ‘생의 기법’을 출판하게 됩니다. 이 책은 1970년대 뇌성마비 장애인운동이 주장해온 것들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자립생활의 가치와 철학임을 재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장애인복지 전공자들에게 필독도서가 된 이 책으로 고인은 일본 장애계가 가장 인정하고 존경하는 연구자가 됐습니다.

덕분에 2007년 고인이 중심이 된 리쓰메이칸대 첨단종합학술연구과(대학원)가 5년 동안 ‘글로벌 시오이(COE) 프로그램’ 국책사업에 선정됐고, 세계 최대 수준의 연구 기반인 ‘생존학 형성거점’(현 생존학연구소)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생존학 형성거점’은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기술을 만들어 내고, 사회와의 관계를 해석하는 연구소입니다.

1980년대 중반 출간 ‘생의 기법’은
일본 장애인복지 전공자의 필독서
연구 기반 ‘생존학 형성거점’ 만들어
장애계의 인정·존경받았던 연구자

한국 장애인운동가·연구회 교류하며
한·일 함께 여는 세계장애학회 꿈꿔

필자가 리쓰메이칸대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입학한 2007년은 마침 글로벌 시오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시기였습니다. 1999년부터 한·일 장애인자립생활운동 교류에 깊이 참여해왔던 필자의 입학을 계기로 고인은 한국장애인운동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장애운동을 꿈꿨던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고인은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경증의 청년 장애인 운동가들이 운동 조직을 만들고 통합을 반복하면서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와 철학이 무엇이었고, 그들의 경험은 어떻게 2000년대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운동과 연결됐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교류를 통해 파악한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장애학 연구자들과 교류도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조한진 대구대 교수가 중심이 돼 만든 장애학연구회(현 한국장애학회)와 매년 서로의 연구 경험을 공유해 왔습니다. 2018년에는 고인이 회장으로 있던 일본장애학회와 한국장애학회가 협약(MOU)을 맺고 본격적으로 학문교류를 시작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고인은 한국장애학회와의 교류를 발전시킨 이후,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돼 세계장애학회를 개최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고인은 지난 16년 동안 우리나라 장애학과 교류하면서 무엇인가를 전해주기보다 배우고자 했습니다. 특히 일본이 30~40년에 걸쳐 만들어낸 가치와 문화를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어냈는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인이 우리나라 장애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질병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연구자의 일임을 알게 해준 것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8회 동아시아 장애학포럼에서 다테이와 신야(앞에서 둘째줄 왼쪽 셋째) 교수 등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고인은 돌아가시기 전 걱정하는 연구자들에게 보낸 마지막 전체 메일에서 “나는 괜찮다. 나를 걱정하는 그 시간에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 적었고,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이틀 동안 대학원생 개개인에 대한 논문지도, 자신의 연구계획 등 많은 메모를 노트에 남겼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역시 마지막까지 고인다운 모습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테이와 교수님, 제가 당신께 배운 것은 “장애와 질병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동을 빛나게 하라”, “현장 사람들이 바빠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대신 정리하고, 그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라”였습니다. 늘 잊지 않고 있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사실 어렵고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눈물을 그만 멈추고 당신이 걸어왔던 그 길을 저도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합니다. 부디 그곳에 편히 잠드소서. 사요나라.

정희경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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