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4대그룹, 전경련 산하 싱크탱크 뒷문으로 ‘꼼수 재가입’ 한다
삼성 계열사 이사회가 속속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안건을 인준하는 등 4대 그룹이 22일 전경련 임시총회를 통한 복귀를 기정사실화 했다. 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책임을 물어 삼성·현대자동차·SK·LG가 일제히 전경련에서 발을 뺀 후 6년여 만이다.
그러나 전경련이 간판만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새 출발하면서 4대 그룹이 형식상 유지하고 있던 전경련 산하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 자격’을 승계하는 모양새로 ‘꼼수 가입’을 유도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들에게 한경연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를 표방한 한경협으로 흡수되는 데 따른 ‘회원 자격 승계 안건’을 보고했다. 삼성 외부 감시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가 정한 “정경유착 행위가 있으면 즉시 탈퇴할 것”이라는 권고사항도 전달했으나, 사실상 전경련 재가입은 승인한 모양새다.
눈치를 살피던 다른 그룹 계열사들도 전경련 복귀 수순을 밟고 있다. 현대차는 전경련 복귀를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내외 관심이 집중된 만큼 복귀 방식과 절차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경련 복귀가) 이사회 의결사항은 아니지만, 대내외 관심도가 높은 사안임을 고려해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별도의 설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SK·LG의 행보도 현대차와 비슷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5개 계열사는 2017년 전경련에서 탈퇴했지만 한경연 회원 자격은 유지하고 있던 게 ‘불씨’였다. 현대차는 5개 계열사, SK는 4개 계열사, LG는 2개 계열사가 여전히 한경연 회원이다.
삼성을 뺀 나머지 3대 그룹은 전경련 복귀가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표면상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에 ‘흡수’되는 것일뿐 ‘재가입’하는 형태가 아니라는 형식 논리다. 삼성도 이사회에서 명시적인 반대 의사만 모이지 않으면 자동으로 한경협 회원 자격을 승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전경련이 한경연 흡수라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4대 그룹을 꼼수로 합류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경협을 출범하면서 표면상 ‘싱크탱크형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로비 창구 노릇을 하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경협 출범을 앞두고 ‘싱크탱크’라는 표현을 전면에 건 것을 두고도 4대 그룹 재가입을 노린 구색 맞추기라는 의견도 있다. 2016년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에서 고 구본무 전 LG 회장은 “전경련은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했고, 이재용 삼성 회장도 “좋은 취지의 사업이 있으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싱크탱크화를 통한 전경련 부활이 이들의 이런 반응을 이용했다는 해석이다.
<독일 싱크탱크 산책> 저자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처럼 민간 연구 생태계가 척박한 곳에서 기업이 싱크탱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재벌그룹의 지배력과 정권과의 유착 가능성이 뚜렷한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게다가 과거 전경련이 해 왔던 역할까지 감안하면 (재출범하는 한경협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 준법감시위도 “전경련이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며 의구심을 표명했다. 이런 우려를 받아들인 듯 삼성 계열사 5곳 가운데 삼성증권이 유일하게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는 쪽으로 이사회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으로선 일부 퇴로를 열어두는 모습은 갖춘 꼴이다. 삼성증권은 준법감시위 협약사가 아닌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한경협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신임 회장에 방위산업체 풍산을 이끌고 있는 류진씨를 선임할 계획이다. 류 신임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경협 운영 방향과 4대 그룹의 복귀 여부 등에 대해 언급할 예정이다. 지난 6개월간 전경련을 이끈 김병준 회장직무대행은 단체 상임고문으로 남을 전망이어서 ‘정치적 연결고리’란 논란이 뒤따른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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