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의 스타트업 산책] 저예산으로 메시지 있는 공포 영화 만드는 美 블럼하우스
최근 한류(韓流)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2021년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체 서비스국(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해 한국 영화 산업의 매출 규모도 약 2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최근 한국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면서 제작 예산도 증가하고 있다. 2021년 넷플릭스는 5000억원을 한국 작품 제작에 투자했지만 ‘오징어게임’ 흥행 이후인 2022년부터 투자 규모를 약 8000억원까지 늘렸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투자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한국 콘텐츠가 투입되는 제작비 대비 성적이 좋다는 점에 있다. CGI(Computer-Generated Imagery)나 VFX(Visual Effect)와 같은 특수효과의 사용과 유명 배우의 출연이 제작비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지만, 한국의 경우 CGI와 VFX 기술이 할리우드로부터 외주를 받을 만큼 발전돼 있어 할리우드에 있는 스튜디오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또 배우나 감독의 경우 할리우드의 인건비보다 적어 저예산으로 양질의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추세는 대체로 다량의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며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히어로물 영화가 많다. 히어로물 영화 중 최대 흥행을 기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약 3억5200만달러(약 4595억712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제작 기간도 제작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영화 준비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제작 기간만 약 18개월이 걸린다. 제작 기간이 길수록 인건비가 늘고 장소나 소품 등의 대여비 지출이 증가한다. 효율적인 마스터 플랜을 세워 최단 기간으로 제작해야 하는 이유다. 짧은 제작 기간을 위해서는 이동과 촬영장 셋업 시간을 줄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장소의 이동이 적어야 하지만 히어로물과 같은 장르에서는 장소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반면, 공포물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공포 영화의 사건은 대부분 한 지역 혹은 한 공간에서만 전개되기 때문이다. 장소의 이동이 많지 않고 유명 배우를 고용할 필요도 없어 공포물은 가장 저예산으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영화 장르로 꼽힌다.
할리우드에 저예산으로 공포물을 제작하는 제작사가 있다. 미국의 영화 제작자 제이슨 블럼이 2000년 세운 공포물 제작사 ‘블럼하우스(Blumhouse)’가 주인공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본사를 둔 블럼하우스는 2009년 저예산 공포 영화인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흥행 이후 연평균 약 8편의 공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공포물은 유명 배우와 감독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며, 일반적으로 팬층이 두꺼워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1995년부터 2023년까지 영화 장르별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15개의 장르 중 공포 장르는 6위를 차지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블럼하우스는 이러한 공포물을 다량 제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역대급 흥행 수익에 기네스북 등재
블럼하우스 창업자인 제임스 블럼이 직접 무명의 감독을 선별해 영화의 제작을 맡겼다. 더 많은 감독과 작업을 위해 소액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블럼하우스의 대표작인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1만5000달러(약 1958만원), ‘인시디어스’는 150만달러(약 19억5840만원), ‘겟 아웃’은 500만달러(약 65억2800만원)의 제작비가 소요됐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감독인 오렌 펠리와 겟 아웃의 감독인 조던 필은 이 작품에서 첫 감독을 맡았다. 인시디어스의 제임스 완 감독 또한 무명 감독이었다. 블럼하우스는 무명 배우를 캐스팅하고 장소 이동을 최소화하는 등 영화 제작 예산을 크게 줄이는 식으로 수익성을 높였다.
특히 2009년 흥행에 성공한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1만5000달러의 제작비로 1억9400만달러(약 2532억8600만원)의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됐다. 제작비 대비 최고 수익률 1위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마케팅 집중해 경쟁력 확보
블럼하우스는 감독에게 제작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을 넘겨주고, 영화 홍보를 위해 마케팅에 집중한다. 블럼하우스는 영화 한 편당 평균 약 500만달러(약 65억2800만원)를 제작비로 쓰는 반면 마케팅비에는 평균 약 3000만달러(약 391억6800만원)를 투자하고 있다. 또 블럼하우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10년간의 퍼스트룩(배급 우선권) 계약을 맺고 25편의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했다. 유니버설 파트너십 외에도 NBC Universal(미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모회사)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사업을 확장했다. 블럼하우스는 자체 자금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의 제작사들은 영화를 제작할 때 그 작품에 대한 투자를 받지만, 블럼하우스는 회사에 대한 투자를 받아 자체적인 자금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자체 자금으로 영화를 제작해 자유로운 창작 과정을 거친다.
메시지 담긴 공포물 제작
블럼하우스는 저예산 영화에 대한 무시를 수익률과 결과로 입증하며 저예산 영화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 저예산으로 시작해 상당한 자본을 보유한 제작사가 됐지만, 지금까지도 저예산 영화를 고집하며 잠재력을 가진 다수의 창작자와 작업해 그들의 색깔이 담긴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매력을 가진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는 시각적인 효과와 청각적인 효과를 사용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반면 블럼하우스의 공포 영화는 완성도 높은 구성을 통해 관객들을 이야기 속에 스며들게 해 그들 내면의 공포를 발견하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두거나 인종차별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무섭기만 한 공포 영화가 아닌 메시지가 담긴 블럼하우스의 영화를 보며 관객은 사유한다. 이것이 독특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블럼하우스의 영화가 주는 힘이다.
2021년 국내에서도 블럼하우스를 벤치마킹한 미스터리픽처스가 설립됐다. 미스터리픽처스는 한국과 일본에 동시 설립된 공포⋅미스터리 장르물 전문 기획&제작사다. 한국과 일본의 만화 및 소설, 웹툰 등의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해 콘텐츠를 제작, 아시아의 블럼하우스를 추구하고 있다. 미스터리픽처스 같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블럼하우스처럼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해 다양한 전략으로 더욱 성장하길 기대한다.
Company Info
회사명 블럼하우스
본사 미국 LA
사업 공포물 콘텐츠 제작
창업자 제이슨 플럼
설립 연도 2000년
누적 제작 작품 수 17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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