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상온 초전도체 LK-99] 한국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상온 초전도체, 어디로 갈까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8. 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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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 극저온에서 가능한 초전도체로 작동해 거대한 냉장고가 필요하다.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나오면 양자컴퓨터도 쉽게 구동할 수 있다. 사진 구글 2 극저온 상태에서 자석 위에 초전도체가 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진이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진 미 로체스터대 3 자석 위에 국내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한 LK-99가 반쯤 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상온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찾았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 물리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김현탁 미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한국 과학자들이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超傳導) 현상을 30℃의 상온(常溫)에서 구현했다고 발표하자 세계가 요동쳤다. 사실이라면 거리 상관없이 무손실 송전(送電)이 가능해 에너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꿈의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성능 전자석도 만들어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 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대중은 당장 노벨상감이라고 환호했지만, 과학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외 과학자들이 실험 결과를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금까지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일 가능성은 있지만, 연구진이 주장하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와는 거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전 세계 전기 공유 가능한 꿈의 기술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7월 22일(이하 현지시각)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세계 최초로 1기압에서 127℃까지 초전도성을 갖는 납 기반 물질인 LK-99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다른 과학자들의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았다. 연구자가 직접 자신들의 논문을 수정 없이 그대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이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 등 고(故) 최동식 고려대 명예교수 제자들이 2008년 설립했다. 이들에 따르면 LK-99는 1999년 처음 발견됐다. 물질의 이름은 퀀텀에너지연구소 이 대표와 김 연구소장 성의 영어 앞 글자를 각각 따고, 뒤에 개발 연도인 99를 붙인 것이다. 그 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재직하다 은퇴 후 미국으로 간 김현탁 교수와 권영완 고려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합대학원 연구교수가 연구진에 합류했다.

초전도 현상은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것이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인체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초전도선 덕분에 전자석에서 전류가 저항 없이 흘러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양자컴퓨터도 초전도체가 기반이다. 문제는 현재 초전도선은 극저온에서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선 피복 안으로 극저온을 유도하는 액체 질소나 헬륨이 흐른다. MRI도 양자컴퓨터도 거대한 냉장고에서만 가동할 수 있다. LK-99가 진짜라면 초전도선을 위한 냉각 물질이나 장치가 필요 없다. 당장 MRI 제조 단가가 떨어지고, 자기부상열차와 양자컴퓨터 구동도 쉬워진다. 태양광이나 수력발전이 용이한 곳에서 만든 전기를 아무리 보내도 손실이 없어 전 세계가 전력을 공유할 수도 있다. 상온 초전도체는 말 그대로 꿈의 기술인 셈이다.

110년 넘게 과학계의 도전 이어져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Heike Kamerlingh Onnes)가 영하 269℃에서 처음 발견했다. 납과 니오븀 합금, 주석 등에서 초전도 현상이 구현됐다. 이 공로로 192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미국 물리학자인 존 바딘(John Bardeen)과 레온 쿠퍼(Leon Cooper), 존 로버트 슈리퍼(John Robert Schrieffer)는 1957년 자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딴 이른바 BCS 이론으로 초전도 현상을 설명했다. 결정격자 구조의 진동이 전자 사이에 접착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쌍이 저항을 받지 않고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세 과학자는 BCS 이론으로 1972년 노벨상을 받았다. BCS 이론에 따라 전자쌍을 유도하는 결정격자 구조의 진동은 영하 233℃ 이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려고 연구했다. 여러 연구진이 초고압으로 초전도 온도를 잇달아 높였다. 2015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대기압보다 150만 배 강한 압력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해 영하 70℃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 이후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는 온도가 영하 23℃, 영하 13℃에 이어 영상 7℃까지 발전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Ranga Dias) 교수는 상온 초전도 시대를 열었다. 그는 2020년 ‘네이처’에 15℃에서 수소와 탄소, 황을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넣고 압착해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과는 그해 ‘사이언스’의 10대 과학 성과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자료를 임의로 손봤다고 ‘네이처’가 게재를 철회했다. 디아스 교수는 지난 3월에는 초전도 온도를 21℃까지 높였다. 이 역시 논문이 나온 지 1주일 뒤 중국 난징대 연구진은 “논문대로 실험을 반복했지만 초전도 현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직 상온 상압 초전도체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물질 합성부터 난항, 실험 결과도 제각각

국내 연구진은 납에 불순물인 구리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가지는 물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원래 납으로 만든 결정은 대칭 구조인데, 일부 원자가 구리로 바뀌면서 형태가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피가 0.48% 줄며 수축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연구진의 발표대로 LK-99를 만들어 실험해본 결과 부정적이었다. 인도 국립물리연구소와 중국 베이항대 연구진은 각각 7월 31일 LK-99를 만들어 실험했으나 상온 초전도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난징 동남대 연구진은 8월 2일 세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LK-99의 저항이 0에 가깝게 나오는 결과를 얻었지만, 영하 163℃ 조건이어서 상온 초전도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시네드 그리핀(Sinéad Griffin)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은 7월 31일 아카이브에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LK-99에서 고온 초전도체에서 나타나는 전자 에너지 상태가 확인됐다고 밝혀 실제 초전도체로 확인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후 “LK-99의 상온 초전도성을 증명한 것이 아니며, 초전도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는 입장을 공개했다.

한국 연구진은 자신들의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모습도 공개했다. 초전도체는 이른바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로 인해 일반 자석 위에 두면 떠오른다. 초전도체가 되면 물질 내부에 침투했던 자기장이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동전 모양 물질의 한쪽 가장자리만 완전히 공중에 뜨고 다른 쪽 가장자리는 여전히 자석에 붙어 있다. 김현탁 교수는 영국 ‘뉴사이언티스트’에 “시료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부분만 초전도가 되어 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 스스로 LK-99의 불완전성을 인정한 셈이다. 그래핀처럼 초전도성 없이 마이스너 효과만 나타내는 물질도 있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납 기반 새로운 강자성체일 수도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8월 2일 검증위원회를 만들었다. 검증위는 초전도체가 공중에 부양된 채 고정되려면 마이스너 효과와 함께 초전도체가 자석 위 특정 위치에 머무른 채 고정되는 ‘자기 선속 고정(플럭스 피닝)’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항상 일부가 자석에 붙어 있는 모습 등을 보인 만큼, 자기 선속 고정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대 연구진은 8월 6일 아카이브에 LK-99 같은 물질을 합성해 영상처럼 자석 위에서 절반만 뜨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합성한 시료의 자기화 정도를 측정했더니 초전도체가 아니라 자성이 강한 강자성체에 가까운 특징이 나타났다”며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라 수직 자기장에서 절반만 뜨는 새로운 강자성체에 가까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특성을 가진 신물질일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중국 연구진도 새로운 물질인 만큼 한국 연구진의 실험 결과가 의미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납·구리·인·산소로 이뤄진 물질 중에서 강자성체를 가진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들뜨게 만든 초전도체가 어디로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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