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거대 기업 합병 막는 美 바이든 행정부, 공정 경쟁 기회 여나
미국 반(反)독점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 반독점국은 지난해 초 기업 간 불법적인 합병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 개정을 목표로 관련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빅테크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 FTC 위원장은 “불법 합병은 더 높은 가격과 더 낮은 임금을 비롯해 기회와 혁신 축소 등 많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두 기관이 반독점법 집행을 현대화하는 방법에 관한 대중 의견 수렴 등 합동 조사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구글의 적’으로 불리는 조너선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도 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7월 19일(이하 현지시각) FTC와 미 법무부가 공개한 ‘합병 가이드라인’ 초안이다. 이 초안은 총 13가지 지침으로 구성됐다. 기업의 합병이 경쟁을 가로막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특정 기업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거나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특정 상품 시장에서 개별 기업이나 기업집단이 차지하는 정도인 시장 집중이 과도하면 안 되고, 시장의 잠재적 진입자를 제거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또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잇달아 인수할 경우, 개별 인수합병(M&A) 한 건만이 아닌 전체 거래를 두고 시장 지배력 변화 등을 평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칸 위원장은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개방적이고 경쟁적이며 회복력 있는 시장은 미국의 경제적 성공과 역동성의 기반이었다”며 “독점금지법을 충실하고 강력하게 집행하는 것이 이 성공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60일 동안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친다.필자들은 기존 미국 합병 가이드라인의 문제점을 짚고 개정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적절한 합병 규제가 경제적 효과는 물론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규제 당국이 기업을 옥좨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바이든 정부가 ‘기업과 전쟁’에 나선 것 같다”며 “당국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합리적인지를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2년 여름, 미국 행정부는 자국 기업에 러브레터를 보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에서 법무부 반(反)독점국 초대 국장을 맡았던 윌리엄 백스터가 발표한 법무부의 새로운 합병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대기업의 권력 축적을 더 이상 제한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후 사실상 제한 없는 기업 합병의 시대가 열렸다.
백스터의 가이드라인은 쿠데타에 가까운 것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관리들은 반독점법을 완화하고 싶었지만, 의회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법을 해석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사실상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기존의 미국 반독점법은 기업들의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합병을 차단했다. 독점이 독일 파시즘의 부상에 기여한 것을 목격한 입법자들이 강력한 반독점법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백스터는 “합병은 자유 기업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선언하며 기업의 합병을 독려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이 책략은 효과가 있었다. 판사들은 실제 법령보다 가이드라인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고, 많은 문제가 있는 기업 합병을 승인해 규제 당국이 기업의 독점적 남용을 억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민주당 행정부는 반독점법에 대한 이 같은 전복을 막는 대신 신자유주의 논리를 받아들였고, 심지어 더 나아갔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에서 시행한 가장 최근의 합병 가이드라인 개정안은 ‘독점’의 기준을 높였고, 규제를 피해 더 많은 합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합병 가이드라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불평등과 부패한 민주주의, 만연한 절망으로 얼룩진 이 세상은 지난 41년 동안 허용된 무수한 기업 합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가 제안한 새로운 합병 가이드라인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지침이 승인되면 1982년의 가이드라인만큼이나 미국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새 가이드라인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 오랫동안 미국 합병 정책의 특징이었던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대한 존중을 포기한다는 점이다. 둘째, ① 기존 미국 반독점 정책의 치명적인 맹점이었던 ‘소비자 후생’ 기준에 관한 내용을 반영, 기업 권력 제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지침은 과거 미 의회가 제정한 합병 금지 조항을 면밀히 따라, 반독점 사안에 대한 판사의 판결 방식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시급하다. (합병 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은 대체로 시장 지배력은 물론 기업 간 경쟁까지 무시해 왔다. 오늘날 법원은 ② 가격 효과(price effect)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합병을 막으려면 복잡한 경제 모델링을 통해 합병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 합병 사건은 판사가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기업이 고액을 들여 고용한 경제학자가 합병이 경쟁에 미치는 악영향과는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사를 설득하면, 기업이 승리한다.
경제학자이자 FTC 고문 출신인 존 콰카의 연구에 따르면, 미 규제 당국이 허용한 대규모 합병의 80% 이상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들은 합병으로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경쟁이 완화하며 임금을 낮출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평균적인 미국 노동자는 연간 약 1만달러(약 1300만원)의 소득 손실을 봤다. 또 일부 산업이 너무 집중되면서 미국의 필수 재화와 서비스 생산 역량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그간의 합병 심사는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행 가이드라인에 따라 규제 당국은 2010년 미국 최대 콘서트 프로모터이자 아티스트 매니저인 ‘라이브 네이션’과 티켓 예매 독점 업체인 ‘티켓마스터’ 간의 재앙적인 합병을 승인했다. 또 페이스북(현 메타)이 소셜 네트워크 시장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라이벌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하는 것도 허용됐다.
칸과 캔터의 새 합병 가이드라인은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관련 기관들에 시장구조에 따라 합병을 평가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합병으로 인해 경쟁자 수가 불충분하게 되는가. 이미 지배적인 기업의 지배력을 더 강화할 것인가. 신생 라이벌을 제거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그렇다(yes)’인 경우 합병을 막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합병 심사는 상품과 노동력 구매자로서 대기업의 힘을 간과해 왔다. 새 가이드라인 초안은 반독점 기관과 법원이 노동시장의 집중도를 높이거나 대기업의 영향력을 강화해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합병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또 이 가이드라인은 온라인 플랫폼이 야기하는 경쟁 문제도 다루고 있다.
새로운 합병 가이드라인이 반독점법 집행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소기업, 농부, 노동자에게 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효과는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설 것이다. 1950년 반독점법이 통과되기 전 2년간의 논쟁에서 미 의원들은 민주주의는 권력이 분산돼야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집중된 권력은 소수의 경영진이 멀리 떨어진 지역사회의 정책과 운명을 결정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은 그들의 판단에 무력하게 의존하도록 만든다. 새 합병 가이드라인은 이런 무력감을 완화해 미국 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대를 보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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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칸 위원장은 소비자가격 인상 여부에 초점을 둔 ‘소비자 후생’ 기준을 재정의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는 자신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 Antitrust Paradox)’에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도 가격에 영향이 없으면 독점 규제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빅테크 시대에 적합하지 않고, 가격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아마존을 규제하지 않으면 그 지배력은 더 커져 소상공인, 저임금 노동자가 플랫폼에 종속되며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아마존 같은 플랫폼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지만, 이면의 광고 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얻는다.
또 아마존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하면서 오프라인 소매점들의 자리는 좁아진다. 소비자가격 상승만을 기준으로 소비자 후생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② 재화, 용역의 가격 변화가 소비자 수요량에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가격효과는 대체효과와 소득효과로 구분된다. 대체효과는 가격 변화로 재화의 수요량이 변하는 것이며, 소득효과는 가격 변화가 실질소득을 증감시켜 재화 소비량이 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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