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폴 몰런드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 연구원] “외력으로 출산율 높일 수 없어… 아이 낳아 기르는 기쁨 스며들어야”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것이 더 강하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라고 영국의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경과 한국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고 목숨을 숫자로만 카운트하면, 한 명의 생명, 한 명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그게 홀로코스트의 교훈이고,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메시지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동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감염자와 사망자 수 뉴스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바이러스와 사투 이면에 팽창하는 노인 인구를 조절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음모론도 퍼졌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 국가가 이민과 고용 서비스로 국민을 모객하는 시대.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탄생의 숫자’는 중요하다. 숫자 안에 인류사의 파란만장과 사회 조직의 역동이 다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한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 된 까닭도 모두 인구 폭발 덕분이었다. 일본이 25년간 장기 침체를 겪은 것도 급격한 출산율 감소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 0.78로, 매해 세계 최저 수치를 경신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은 2050년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2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회의 평균연령이 계속 높아지면서 학교는 텅 비어가고 요양원은 꽉 차게 될 것이다. 심각한 인구 소멸의 추이를 지켜보며 어떻게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영국의 인구학자 폴 몰런드를 만나 지혜를 구했다. 폴 몰런드는 ‘인구의 힘’이라는 명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숫자에 이야기를 입힌 인문서 ‘인구의 힘’에서 그는 2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인구 혁명의 이야기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된 여성의 이야기이며, 평생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고 아파트에서 고독사하는 일본 노인의 이야기이며, 기회를 찾아 지중해를 건너가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이야기”라고 했다.
인터뷰 자리에 나온 폴 몰런드는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이 평온한 눈으로 숫자와 삶을 연결했다. 인구학의 구루가 전하는 한국 인구 문제의 인사이트는 매우 날카롭고 혁신적이었다. “2040년에는 한국인의 중위 연령이 50세에 이를 거다. 젊은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압력으로 한 나라를 멸종에서 구해야 한다면, 그 나라는 지켜질 필요가 없다”라는 직언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구는 삶의 시작과 끝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통계적으로 복잡한 숫자의 기록으로 보이지만, 연구할수록 인구 문제는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삶과 죽음은 숫자가 아닌 각자의 인생이다.”
인구학자의 관점에서 지금 한국은 어떤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 모든 면에서 매우 흥미롭다.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고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단기간에 인구 폭발로 간 건 경이롭지만, 순식간에 한 여성당 합계 출산율이 한 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재앙이라고?
“한국은 현재 전 세계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저조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재앙이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귀에 섬뜩하게 다가왔다. 21세기 말에 이르면 세계 인구의 성장 추세가 완전히 멈출 거라고 했다. 일부 국가는 벌써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중동에서 영아 사망률 하락으로 증가한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하자 근본주의와 폭력에 빠져들었다. 인구 구성에서 젊음과 늙음이 차지하는 비율이 한 사회의 역동과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나.
“그렇다. 젊은이들은 많은데 고용 시장이 불안해서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사회 안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희망 없는 성난 청년은 극단주의와 행동주의에 쉽게 자극받고, 기존 사회의 구조를 뒤흔든다. 만약 중동이 일본이나 한국처럼 고령 인구가 많다면 극적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인종도 인구도 적정 균형을 유지할 때, 한 나라의 평화와 지속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고 폴 몰런드는 나지막이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맞추기 위해 다른 인종, 다른 나라에 폭력적인 위해를 가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고.
인구학자로서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의 인구 경주와 국력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
“1490년부터 시작해서 500년 동안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돼서 권력을 누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인구 폭주에 불안감을 느꼈고, 독일은 러시아의 인구 성장에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했다. 인구 성장률 격차에 대한 각 나라의 두려움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서로를 자극했다. 유럽의 인구가 오르고 내리는 사이클을 보면서, 세계 지배는 인구 폭발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영국과 그들의 이주 국가인 미국의 인구 팽창, 영어 문화권의 확대가 지금 세계 질서의 바탕이 됐다. 인구와 제조업이 결합해서 시너지를 일으킨 거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선생의 ‘총 균 쇠’와 폴 몰런드 선생의 ‘인구의 힘’을 함께 읽고, 문명사는 곧 전쟁사, 숫자의 싸움이고 전쟁사는 곧 인구의 흥망성쇠라는 걸 알았다. 여기서 선생이 특히 흥미롭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인구의 기본 흐름은 같다. 인구 성장의 시작은 영아 사망률 감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득이 오를수록 출산율은 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권과 기독교 국가 등 종교성이 강한 나라는 소득이 오르는 만큼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았다. 출산과 생명, 어린아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문화 덕이 아닌가 싶다. 태국, 베트남 등 불교 국가도 마찬가지다. 인구 소멸을 막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인은 종교성이 강한데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의 저출생 문제는 단시간에 너무 심각해져서 나도 의아하다. 한국에는 기독교인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종교가 유일한 답은 아니지만, 소득이 늘면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 원리에 브레이크를 걸 다른 장치를 찾기 힘들다.”
선생의 무자녀세 제안에 많은 한국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알고 있나.
“그런 반응은 상상하지 못했다(웃음). 무자녀세는 내가 영국에서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 중에 처음 나온 이야기다. 저출생을 타개할 대안으로 아동 수당을 얘기했는데, 영국 정부가 그럴 예산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너스 아동 수당’을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 거두면 어떨까, 의견을 냈다. ‘무자녀세’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보다 정부 차원에서 더 섬세한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 패권 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인구 경주는 어떻게 보나.
“그 두 정부가 인구 문제를 예민하게 보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과 중국은 매우 다르다. 일단 미국 정부는 출산율에 관심이 없다. 출산율이 중국보다 높을뿐더러 미국은 얼마든지 이민자를 데려올 수 있다. 이민자가 융화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다.
중국은 이민자를 유인할 방법이 없다.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언어 장벽도 높다. 한 자녀 정책을 너무 오래 고집한 뒤에 갑자기 ‘많이 낳으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중국 정부도 숫자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텐데 대처법은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나.
“한국은 1980년대부터 출산율이 떨어졌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하락률이 늦게 온 편이다. 그래도 좋은 신호는 한국 정부는 돈이 많다는 거다. 그건 매우 큰 장점이다. 노동력 부족은 돈이나 로봇으로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중국에 비해 오픈돼 있고 국민의 기세가 드높다. 통제가 심한 중국 사회에서는 어림없다. 문제를 인식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옵션이 있다.”
그게 뭔가.
“생각을 다르게 해보자. 북한에 2000만 명의 인구가 있지 않나. 북한은 한국에 훌륭한 인구 증가 옵션이다. 1950년 이후 한국의 중위 연령은 20세에서 40세로 두 배나 높아졌고, 2040년에는 50세에 이를 것이다. 젊은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경우 다른 나라는 극심한 인종 갈등과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이민 정책을 추진한다. 북한은 같은 인종,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니 훌륭한 옵션 아닌가?”
통일을 군사적, 정치적 긴장이 아니라 인구와 노동력의 셈법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북한 인구는 이주가 불가하고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탈북민의 정착도 쉽지 않다고 하자, 폴 몰런드는 자신은 발상의 전환을 제시할 뿐이라고 했다.
인구 폭발로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인도나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어떤가. 인구가 젊고 성장하는 나라는 노동력과 내수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 경제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로 알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한동안은 비슷한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기반으로 1인당 2~3명의 출산율을 오래 유지했다. 비슷한 출생이 일정 기간 유지되면서 안정된 상태에서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인도는 한동안 인구 증가가 이어졌지만, 하락이 시작될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인도는 무슬림, 힌두 등 여러 종교가 있다. 하나의 종교가 강력하게 붙잡지 않을 경우, 소득이 높아지면 출산율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한국 소득 수준의 8분의 1에만 도달해도 출산율은 한국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한국은 고도 경쟁으로 단기간에 부유해지고 욕망의 기준이 높아졌지만, 그 경쟁 스트레스로 아이를 안 낳게 됐다.
“그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아이에 대한 과한 투자⋯,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특별하다. 부유해질수록 경쟁은 과열되고, 그 압력을 아이에게 얹는 구조다. 생태적 악순환이다.”
왜 정책으로는 출산율 저하를 막기 힘든가.
“벌금을 매겨 교통 규칙을 잘 지키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책이 인간 가치관을 바꿀 수는 없다. 인구통계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화를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정신 건강 분야도 그렇다. 자살과 우울증을 정책으로 막을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일은 정책이 힘을 못 쓴다. 그 사회에 널리 퍼진 믿음, 다수의 목소리, 문화가 지배한다.”
한국도 돌봄 노동이나 저임금 노동 등에 ‘이주 노동자들’에게 빚지고 있지만, 사회 통합이나 인권 문제에서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다. 어쨌든 ‘이주’ ‘대이동’ ‘이민’이 인구공학 면에서나 개인 인생의 역동성 면에서 미래 인류의 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민이 해답은 아니다. 영국도 한국보다 15년 앞서 출산율이 인구 대체 출산율을 밑돌기 시작했고, 수백만 명의 이민자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인종 변화로 갈등이 계속된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도 늙어간다. 그리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고 부유해지고 있고 고령화하고 있다. 이민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에 이르리라는 두려움과 동시에 ‘아이를 낳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 인권’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나.
“아이를 낳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다. 사회적 압력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외력으로 한 나라를 멸종에서 구해야 한다면, 그 나라는 지켜질 필요가 없다.”
청년들이 좋아할 발언 같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행복이 너무 크다. 이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퍼진다면, 그 어떤 정책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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