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글이 되는 음악] 폭염 뚫고 15만 명 몰린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 어우러진 청춘들
“록 페스티벌은 청춘 시절의 자기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 시각에 거기에 있었다는 건 젊은 날의 추억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에 찍는 청춘 인증 소인이며 헌시입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며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입니다. 청춘과 청춘이 어우러지고 세대와 세대, 이웃 나라와 더 먼 나라의 젊은이들이 하나가 되는 우정의 장입니다. 펜타포트 무대에 서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8월 4일부터 6일까지 인천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3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의 마지막 무대에 섰던 김창완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한 줄 한 줄 정갈하고, 록 페스티벌의 정서적 본질을 꿰뚫는 글이다. 한편으로는 이 무대에서 김창완이 느꼈을 감동과 소회 또한 느껴지기도 한다. 김창완밴드 앞에서, 수만 명의 관객 옆에서 90분간의 공연을 함께 보는 동안 역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부터 이 행사를 한 해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목도했던 흥망성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흘간 15만 명 에너지 발산
올해 펜타포트는 모든 면에서 기록적이었다. 우선 날씨가 그랬다. 첫날, 둘째 날은 습기와 바람조차 없이 기록적 폭염을 달성했다. 숫자는 33~35도를 가리켰지만 체감은 40도 이상이었다. 마치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과거 펜타포트 하면 떠오르던 굵은 빗줄기는커녕 소나기조차 내리지 않았다. 무대에서 쉴 틈 없이 뿌려지던 워터캐논이 단비 그 자체였다. 아무리 휴가철이라지만, 그늘조차 많지 않은 더위 속으로 오려는 사람이 많으면 이상하다. 그 이상한 일이 사흘 내내 펜타포트에서 벌어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3일간 15만 명이 입장했다. 역시 기록적인 숫자다. 한국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숫자는 시위 참가 인원과 페스티벌 관객 수라는 농담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현장에서 체감한 인파로도 이 숫자가 마냥 부풀린 건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무대 앞은 늘 꽉 차 있었고, 사람이 서 있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의 밀도 또한 여느 때보다 높았다. 2020년과 2021년의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사상 최대 인파가 몰린 지난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펜타포트를 찾은 것이다.
이 많은 사람 앞에 선 뮤지션들은 ‘많은 사람’이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에너지 앞에서 모두 고양됐다. 한낮의 땡볕 아래 섰던 팀이나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갈 무렵에 섰던 팀이나 그날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늦은 밤에 섰던 팀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준비해 온 최선의 기량을 선보였고, 기대했던 그 이상의 반응을 얻어냈다. 한국 팬의 반응에 내내 설레하던 일본 밴드 히츠치분카쿠(羊文学)의 보컬 시오츠카 모에카는 유튜브에서 봤던 어떤 라이브보다도 격앙된 표정으로 노래했다. 단순한 호응이나 반응뿐만 아니라 팬들이 준비해 오고 객석으로 퍼져나간 단체 율동(?) 때문이었으리라. 참가팀들 중 가장 에너제틱한 공연이었다 회자하는 일본 3인조 여성 펑크 밴드 오토보케 비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외팀들뿐만 아니었다.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무대에 선 발런티어스의 백예린의 표정을 보며 이동하던 누군가가 말했다. “저런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폭염을 뚫고 모인 많은 사람, 많은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 에너지가 모여 만들어 내는 록 페스티벌만의 아우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헤드라이너 해외팀 엘르가든·스트록스
지난해의 넬, 뱀파이어 위크엔드, 자우림에 이어 3일간의 하이라이트를 책임진 헤드라이너는 엘르가든, 스트록스, 김창완밴드다. 모두 큰 의미가 있는 팀이다. 펑크의 기세가 매서웠던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엘르가든은 2018년 활동 재개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과거에도 국내 페스티벌에 선 적 있었으나 헤드라이너로선 처음이었다. 보컬 호소미 타케시는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몸과 목소리로 한국 관객을 열광케 했다. 과거 한국 CF에 쓰이며 큰 인기를 끌었던 ‘Marry Me’를 포함, 90분간 21곡을 연주하며 브레이크 따위 없는 자동차 같은 에너지를 과시했다. 토요일 헤드라이너인 스트록스는 2006년 첫 번째 펜타포트 첫날의 헤드라이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당시 하루 종일 쏟아지는 폭우로 끝까지 남은 관객은 500명 남짓이었지만, 밴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신의 공연을 펼쳤다. 비를 맞으며 열광하는 팬들에게 감동한 보컬 줄리언 카사블랑카는 자신도 비를 맞겠다며 공연 도중 객석으로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때 가장 잘나가는 젊은 밴드였던 그들에게도 17년의 세월은 짧지 않았다. 미청년들은 중년이 됐고, 록의 전성시대도 과거 일이 됐다. 그러나 2006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관객이 여전히 스트록스 앞에 있었고, 2006년의 젊은이들보다는 2023년의 젊은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트록스는 스트록스였다. 나른과 게으름 사이의 어디엔가 있는 카사블랑카의 보컬도 여전했다. 창의적 리프와 복고적 사운드를 기반으로 간결하지만 정교한 훅을 뿜는 팀의 연주도 그랬다. 성실보다는 충동과 즉흥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세기말, 세기 초의 분위기도 고스란했다. 충동과 즉흥보다는 성실과 겸손이 미덕인 이 시대 젊은 관객에겐 호불호가 갈렸지만 펜타포트와 함께 18년을, 록의 시대와 함께 소년-청년기를 살아온 나 같은 이들에겐 그조차도 하나의 감회일 수밖에 없었다.
김창완밴드 ‘너의 의미’에 떼창 퍼져
마지막 날 김창완밴드. 2008년 산울림 공식 해체와 함께 결성된 이래 그들은 무수히 많은 페스티벌에 섰다. 펜타포트에도 여러 번 나왔다. 하지만 헤드라이너는 이번이 처음. 카메라 앞에선 늘 밝은 김창완이지만 이날만큼은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도 함부로 말을 걸기 힘든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문 좀 열어줘’로 그들이 연주의 포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노래 불러요’ ‘불꽃놀이’ ‘아니 벌써’까지, 산울림 시절의 명곡과 숨은 곡들은 새로운 편곡으로 20~30대 앞에 펼쳐졌다. 올해로 칠순인 김창완의 성대는 여느 젊은 뮤지션들보다 압도적인 성량을 뽐냈다. 과거 산울림의 앨범에 담긴 목소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명곡 중의 명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긴 베이스리프가 울리자 멀리 앉아있던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 대중에겐 아이유의 노래로 익숙한 ‘너의 의미’가 시작하자 함성이 울렸다. 압도적인 떼창이 퍼졌다. 그 순간, 김창완의 표정은 진심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진심으로 밝아졌다.
1977년 산울림 1집이 나온 이래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펼치는 공연이었다. 산울림의 마지막 앨범이 나온 1997년 즈음,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관객의 주를 이루는 공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울림과 김창완밴드의 음악에 온몸으로 반응했다. 산울림의 20년, 김창완의 47년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을 생생하고 거대한 에너지가 무대로 쏟아졌다. 공연의 절정이었던 ‘개구쟁이’의 후반부, 관객을 향해 김창완은 머리 위로 거대한 하트를 그렸다. 애초 세트리스트에 없던 ‘나 어떡해’와 ‘안녕’을 앙코르로 연주할 때까지 입추를 이틀 남겨둔 송도 밤은 낮만큼 뜨거웠다.
한국 록 페스티벌의 역사를 열었고 그 부침을 함께했으며 다시 전성기를 맞은, 2023 펜타포트에 걸맞은 아름다운 일요일이었다. 다시 기억에 남을 사흘이었다. 이제 내년을 기다린다. 얼마나 좋은 팀들이, 얼마나 많은 관객과 함께, 얼마나 멋진 사흘을 그릴지, 다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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